- “이 노래 나오고 나서 우주 염불 외는 노래만 나오더라.”
이 문장을 읽고 웃음을 참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잠깐 고백하자면 필자는 연초가 되면 추억여행을 떠나곤 한다. 한 해를 돌아보다 더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 옛 K-POP을 듣는 순서로 진행되는데, 아직도 2010년대 초중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 더 고백. 필자는 지금, ‘현재’의 K-POP과는 권태기에 빠진 상태이기에 일부러 헤어나오지 않고 있다.
어릴 때는 어른들이 으레 하는 “그때가 좋았지”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마트폰이 일상이 된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필자로서는 첨단을 달리는 모든 것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도시의 이지러진 불빛도, 나날이 발전하는 스마트기기도, 어느 하나 빠짐없이 말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편하고 멋지게 사는 게 좋은 게 아닌가?”와 같은 말과 함께. 아마 그 시절의 필자는 무엇이든 빠르게 접하고 공부하는 것이 미덕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혹시나 놓치고 온 것이 없는지 돌아보았을 때가 되어서야 그 시절의 찬란함을 알게 되었다. 빛나지 않아 소중했던 시절들, 더 이상 가지 못하기에 돌아가고 싶은 날들. 사람들이 ‘좋았던 시절’이라고 부르는 그때를 상징하는 노래가 뭐냐는 말에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럽미라잇’만한 게 없다고.
© SM ENTERTAINMENT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보자. 이 문장은 어느 오후에 추억에 젖어 유튜브를 감상하던 중 댓글창에서 발견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밑을 장식하는 동조의 댓글들을 보며 새삼 엑소의 영향력이 대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필자의 학창시절을 상징하는 아이돌은 따로 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엑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건 아니지만 노래가 나왔다고 하면 듣고, 예능에 나왔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채널을 고정시키게 하는 아이돌 말이다. 엑소의 탄생부터 ‘폭발적’이라고 정의할 수밖에 없는 2013년을 거쳐 정상 아이돌의 자리를 굳건히 지킨 지금까지. “최애는 최애, 차은우는 차은우”라는 말처럼 가슴에 하나씩 품고 사는 아이돌이 있는데, 나에게는 그 아이돌이 엑소였던 것이다.
아직도 생각나는 기사가 하나 있는데, 엑소가 먼저 무언가를 시도하면 다른 기획사들이 줄줄이 따라하게 된다는 한 기획사 관계자의 말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엑소가 교복을 입으면 그 다음부터 음악방송이 학교인지 무대인지 헷갈릴 지경까지 갔으니 말이다. 물론 SM이라는 회사 자체가 발빠르게 움직이는 트렌드 세터의 위치에 있기에 가능했지만, 성공한 아이돌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엑소가 한다면 필자가 아이돌이었어도 따라 했을 것이다. 그 문장 역시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라 추정되는데, ‘LOVE ME RIGHT’ 이후로 사랑의 영역에 우주를 데려온 노래가 속속 등장했기에 필자 역시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사랑 고백
어릴 때 엄마는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냐고 묻곤 하셨다.
그럴 때마다 어리디 어렸던 필자 曰,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도 모르고 사랑한다는 말을 곧잘 하던 필자는 자라나면서 사랑을 내뱉기보다는 솜사탕을 녹이듯 입 안에 머금기만 했다. 땅도 맨틀을 13km까지밖에 못 뚫고 하늘은 끝이 없는데, 그럼 도대체 얼마나 사랑한다는 거야. 문과임에도 이과 친구들과 친했던 필자는 가장 감정적인 사랑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서 사랑 노래들을 흘려 넘기곤 했다.
‘LOVE ME RIGHT’에 귀 기울이게 된 계기는 단 한 구절의 가사 때문이었다.
“내 우주는 전부 너야”
그때나 지금이나 두근거리는 사랑을 꿈꾸는 사춘기 여학생들의 마음을 흔들어버리기에 충분한 가사였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이 구절에 유독 끌렸던 건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 때문이었다. 넘쳐흘러서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부풀어오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오히려 사랑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끝이 어딘지도 가늠할 수 없는 우주에 고백의 대상을 비유했다. 흔히 각자의 세계를 하나의 우주라고 하는데, 그 공간을 잠식한 것이 바로 나(=청자)라니.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고도 그 마음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 네 마음속 은하수가 되고 싶어
실제로 이 노래의 가사에서 제목을 제외하고는 ‘사랑한다’, ‘좋아한다’와 같은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눈 여겨 볼만한 점이다. 대신 화자는 사랑의 대상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들을 우주를 구성하는 아름다운 형상들에 비유하고 있다.
“도로 위에 여긴 runway
날 바라보는 눈 속 milky way”
별빛이 빛나는 시간에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그 속에는 희미한 별빛을 반사한 내가 들어차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은하수에 비유해 ‘너’라는 우주 속 일부를 구성하는 수 백 개의 별무리로 표현한다. 즉, 우주로 표현되는 청자의 마음속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 그러니까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꿈과 희망을 담은 별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우주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화자가 청자에게 준 사랑이라는 이름의 은하수는 바로 화자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은하수가 강처럼 흐른다면 화자도 청자의 마음에 흘러 넘치는, 그런 사랑이고 싶을 것이다. 그런 짜릿한 순간을 경험하는 곳은 누구나 가장 빛나고, 주인공이 되는 런웨이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 너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의 야간비행
‘LOVE ME RIGHT’의 가사를 처음부터 읽어보면 기승전결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 읽지 않더라도 이 구절을 읽는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달빛 찬란한 밤 펼쳐진 별들의 불꽃놀이
좀 더 높이 날아가볼까
가슴 터질 듯한 이 순간 우리 둘만 떠올라
발 밑에 지구를 두고 love me right”
인위적인 빛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우주 어딘가에서는 별들이 죽고 태어나길 반복하고 있다. 다만 새로 태어났다는 별의 나이를 우리 식으로 치환했을 때 만 살이라는 것이 넌센스인데, 필자는 가사에 등장하는 ‘별들의 불꽃놀이’가 바로 별의 생성과 소멸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별의 일생이 긴 만큼 탄생과 소멸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불꽃놀이’는 한 사람의 일생 안에서는 완성되지 못한다. 그런데 가사에서는 발화에서 폭발까지 이어지는 시간동안 청자와 함께 날아오른다고 한다. 즉, 길게는 수 만 년의 시간이 걸릴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동안 두 사람이 함께 할 것이고, 이는 곧 영원한 사랑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을 안고 행복을 향해 밤하늘로 날아오르는 두 사람. 그리고 그 순간에 ‘love me right’을 외치며 사랑은 절정을 맞이한다.
‘수 없는 밤이 찾아와도 내 하늘엔 오직 너만 빛’난다고 말하는 화자는 마지막에 한 번 더 자신의 우주는 청자임을 밝히며 마무리를 짓는다. 대부분의 아이돌 음악이 팬을 대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해석하면 결국 이 노래는 EXO-L을 향한 가장 뜨거운 사랑 고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둠이 찾아오거나 별이 수놓는 아름다운 밤에도 나에겐 오직 너만 빛난다는, 세상에서 가장 두근거리는 사랑 고백. 이 노래를 들은 모두가 오늘 밤에는 꿈속에서 엑소와 함께 ‘우리만의 야간비행’을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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