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슴덕의 심장을 조종하는 이들 - Kenzie 下上편>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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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이렇게 좋은 곡이 많은데 사람들은 이걸 모르지?’라는 원초적 의문에서 비롯되었다. 케이팝 팬이라면 으레 익숙할 ‘타이틀이 난해해서 그렇지 수록곡 맛집이에요’를 1n년 전부터 외치고 있는 사람으로서 Kenzie(이하 켄지)의 음악은 그 리스트에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대중성보다는 실험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보이그룹과의 작업에서 좋은 시너지를 보여준 사례가 많았기에 일반 대중들은 잘 알지 못하는 ‘명곡’들을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에는 꼭 나만의 추천곡을 쓰겠노라 다짐했다. 앞선 글들로 켄지가 보여준 성장형 여성 서사의 연대기를 펼친 만큼, 이번 글은 그가 남성 아티스트와의 작업에서도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켄지와 SM 소속 남성 아티스트들의 작업물 중 2015년 이후에 발매된 곡들을 위주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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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이니(SHINee), <All Day All Night> (2018) - 새로운 ‘처음’을 맞이하는 뜨거운 찬가
2018년에 발매된 정규 6집 [The Story of Night] 시리즈 중 첫 번째로 발매된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그동안 켄지는 샤이니를 통해 다양한 사랑의 색깔을 보여주었다. ‘누난 너무 예쁘다’며 다른 사람에게로 갈까 두려워했던 연하남(<누난 너무 예뻐>)이 어느덧 훌쩍 자라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든든한 남자친구가 되었고(<Love Sick>), 삶이 조난의 연속이라는 말을 반증하듯 외로운 자신의 삶에 ‘네’가 구원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에서 외로운 뒷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Rescue>). 또한 영화 <Warm bodies> 속 좀비 ‘R’처럼 인간 소녀에게 매료되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인간처럼 모습이 변하는 데 비유하기도 한다(<Why So Serious?>)
하지만 <All Day All Night>은 그동안 켄지가 작업한 샤이니의 곡들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 이전의 것들이 연인(혹은 근접한 무언가) 사이의 사랑을 노래했다면, 이 곡은 자신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외치는 환희와 같다고 생각했다. 앞선 문장에서 ‘사랑’이라는 표현이 모두 들어갔기에 둘 사이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물을 수 있다. 이에 대답하자면 그동안은 face to face, 즉 일대일의 애틋함 내지 벅차오름이었다면, 이 곡은 ‘내 삶의 모든 외침이 곧 예술’이라는 온앤오프(ONF)의 말마따나 자신을 믿고 응원해주는 모든 이들과 ‘터질 것처럼 뜨거운’ 사랑을 안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외친다. 일종의 시작을 공표하는 셈이다.
이는 이 곡이 발표된 시점이 샤이니의 데뷔 1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는 데 맥락을 맞출 수 있다. 2008년 데뷔 이후 여러 변곡점들을 거치면서 성장한 샤이니에게도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은 남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SM 최초의 ‘컨템포러리 밴드(contemporary band)’를 선언하며 주류 아이돌들과 대비되는 음악을 다채롭게 선보였지만, 그들에게는 매 순간이 새로운 시작이었을 것이다. 모든 활동에서 ‘처음’을 경험했던 샤이니가 새로운 시작을 공언한 건 그동안의 10년을 한 단락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니라, ‘더 피어날 신세계’로 나아갈 그들의 당찬 포부를 보여주기 위함으로 해석할 수 있다. 때론 ‘아픈 상처도 안아’주며 서로를 위로하고, ‘더 원하는 걸 말해’준다면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향으로 함께 걸어갈 이들에게 마치 ‘걱정 말라’며 힘차게 외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세상에 외치는 개선가처럼 들리기도 한다.
가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 곡은 청춘 스포츠 만화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더 뜨거운 불꽃을 던질게’라는 부분에서는 어릴 적 보던 <피구왕 통키>의 주인공 통키가 상대 진영에게 날리는 불꽃 슛이 연상되고, ‘밤의 깊고 새파란 정적도 / 한낮의 태양 그 눈부심도’에서는 푸른 들판의 아득한 끝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만화 속 주인공들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이미 엔딩이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이 아닌, 또 다른 길을 개척하는 삶에의 찬가! 그리고 여기에 동행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뜨거운 고백! 이 모든 것이 <All Day All Night> 안에 들어있다.
이 곡을 기점으로 2010년대 후반에 나타난, 피어나는 청춘의 단상을 잘 그려내는 켄지의 특징이 등장한다. 아직 서툴고 미숙하지만 모든 것의 ‘처음’을 상징하는 열정, 그 자체인 청춘의 서사는 NCT DREAM(엔시티 드림)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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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CT DREAM, <We Go Up> (2018) / <Hello Future> (2021) - 지금 내 손을 잡고 앞으로
2010년대 초중반이 레드벨벳이었다면 2010년대 후반은 NCT DREAM(이하 엔시티 드림)과의 작업물에 주목해야 한다. 디지털 싱글로 발매된 데뷔곡 <Chewing Gum>부터 모든 타이틀곡에 참여한 켄지가 그려내는 ‘청춘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표현하는 아티스트가 바로 엔시티 드림이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살펴본 여성 아티스트들의 성장 서사가 남성 아티스트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 그룹에 적용되는데, 특별히 두 곡을 선정한 이유가 있다.
우선 <We Go Up> 전에 발매된 타이틀인 <Chewing Gum>과 <We Young>은 또래 10대들이 경험할 만한 풋풋한 첫사랑의 감정이 두드러진다. ‘넌지시 마주치는 시선이 어색해’ 다른 곳을 바라보는 어리숙한 소년(<Chewing Gum>)이 ‘어른이 되면 기억이 남을까’라는,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며 순수한 웃음을 짓는(<We Young>) 연결은 청자의 마음도 간질거리게 하는 묘한 설렘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앞서 살펴본 샤이니의 곡에 나타난 ‘처음’의 감정이 어떤 형태로든 내재되었다는 점에서 2010년대 후반 켄지의 가사가 지향하는 가치 내지 감정들을 엿볼 수 있다.
본격적으로 시작점에 선 청춘이 부각되는 시점은 2018년에 발매된 <We Go Up>이다. 이 곡은 전반적으로 사랑보다는 미래에 대한 포부를 외치는 것처럼 들린다. 스테이지, 트랙 같은 단어에서 마치 게임 속 주인공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눈 앞에 놓인 퀘스트를 하나씩 깨는 모습이 연상된다. 청춘이 고난의 연속이라고 관용적으로 비유되는 걸 생각해보면 이 곡의 화자 역시 아직 미래가 어떨지 예상할 수 있는 고견은 가지지 못했다. (샤이니의 곡 속 화자에게 원숙함이 있었던 것과는 다르다.) 그렇지만 자신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사랑하는 너(=청자),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다음 스테이지’로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엔드림’의 모습에서 그때만 가볼 수 있는 길이 보인다.
이처럼 이 곡도 샤이니에서 이어지는 ‘도전과 사랑의 융합적 양상’이 나타난다. 앞선 곡들에서 자신의 순수한 사랑을 고백했다면, 이 곡부터 그들은 고백을 받거나 받을 상대방의 감정까지 끌어안으며 내일로 달려가는 듯하다. 다만 회고적 성격보다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를 바라보는 네 두 눈’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며 기세등등한 스무 살이 떠오른다. 또한 ‘튕겨봤지 뭐만 하면 shot’(<덩크슛(Dunk Shot)>)이나 ‘달콤한 풍선껌 이젠 다 씹었네’(<Chewing Gum>)처럼 이전에 발매한 곡들의 제목이나 가사를 인용하면서 ‘분명 전과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나’임을 증명한다. 이는 단순히 청춘의 패기만으로 도전하는 것이 아닌, 그동안 자신에게 닥친 도전과 고난의 시간이 더 밝은 미래로 우리들을 안내할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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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로의 손을 잡고 미래로 나아간 이들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은 <Hello Future>에 드러난다. 주목할 점은 3년 후에도 여전히 ‘시작’을 말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도전이 답보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 새롭게 자신들(=엔시티 드림)을 사랑하게 된 이들(=팬)에게 사랑과 용기를 주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다렸어 어서 와’로 문을 여는 후렴구부터 ‘전쟁 같던 시간들’ 속에서도 자신들에게 와준 이들을 향해 따듯한 환대를 건넨다. 반대로 <We Go Up> 속 청자에 대입하더라도 ‘또 꺾이고 다쳐도 누구보다 강한 너’라고 지칭하는 데서 그동안 여러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내면이 단단해진 서로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결국 <Hello Future>는 드림을 사랑하는 모두를 향한, 가장 진심 어린 인사이자 초대장이다. 상대방을 향한 표현들을 통해 화자 역시 내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뤄내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우리를 향해 손을 뻗는 그들과 함께 할 마음이 피어난다. 나 혼자가 아닌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두 손을 맞잡고 걸어가는 것, 이런 포용의 자세가 켄지가 지향하는 청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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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CT 127, <백야 (White Night)> (2020) / 백현, <Cry For Love> (2021) - Love, never die
청춘, 도전과 같은 키워드와 궤를 같이 하는 최근 켄지의 키워드는 이별이다. 이전에도 발라드곡에 여럿 참여한 이력이 있지만, NCT 127의 <백야 <White Night)>와 백현의 <Cry For Love>는 그동안 켄지가 보여준 사랑의 색채 중 가장 무채색에 가깝다. 두 곡 모두 시점은 연인과의 이별이 이미 이뤄진 후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려오는 상태를 눈 앞이 새하얗게 번진 듯 잠들지 못하는 상태에 비유한 제목에서부터 <백야>는 절절한 감정이 극대화된다. 켄지는 이 곡의 작곡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렇게 연인과 이별했을 때의 화자가 노래하는 곡들 대부분이 느린 템포의 R&B곡이었다는 점에서 이 곡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상편에서 다뤘던 동방신기의 <One>처럼 피아노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피아노 단독으로 전개되는 부분에서 상실감과 절망감이 함께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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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y For Love>는 <백야>의 화자에 비해 아직 상대방을 잊지 못해 붙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끝이 보이는 사랑임에도 놓지 못하고 하염없이 무너지고 마는 화자의 모습은 사랑에 솔직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절실함이 묻어난다. 이는 중편에서 살펴본 서현의 <Don’t Say No>의 화자와 연결 지을 수 있다. 앞선 글에서 과거 미디어에서 을의 연애를 하는 것으로 묘사되던 여성이 사랑에 있어 속된 말로 ‘갑질’을 하려는 모습에서 새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했을 때 남성이라고 사랑에 솔직한 모습이었을까. 필자의 답은 ‘아니다’이다. ‘너는 남자니까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구시대적인 마인드는 남성 역시 자신의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는 것을 강요했다. 그렇지만 이 곡 속 화자는 그런 주류의 관점에서 벗어나 자신이 여전히 상대방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잡고 싶은 마음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누구든지 사랑에 있어 솔직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켄지가 이 곡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일까.
지금까지 네 편의 글을 통해 켄지의 음악 세계로 잠시 여행을 떠나보았다. 작곡과 작사, 두 분야에서 모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아티스트이기에 어떤 곡을 선정해야 할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여기서 미처 다루지 못한 곡들도 있어 아쉽지만, 필자가 켄지의 음악을 들으면서 느꼈던 생각과 나름의 해석을 가감없이 표출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음악은 단순히 청자의 귀를 즐겁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거창하게는 삶의 의미까지 반추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켄지의 음악은 청춘의 철도를 달리고 있는 현재의 필자에게 많은 의미를 준다.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랑하며 사는 삶, 요즘 그의 음악을 들으면 이 구호를 속으로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겠지.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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