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도, 기사에서도 걸핏하면 보이는 ‘걸 크러쉬’는 대체 무엇을 뜻하는 걸까. 걸크러쉬란 여성이 여성에게 반하는 것을 의미하며, 같은 여성에게 강한 호감을 느끼거나 동경의 뜻으로 사용한다. 가장 큰 특징은 해외와 달리 유교 사회인 국내에서 걸 크러쉬의 정의는 사랑에 기반을 둔 호감이 아닌 ‘동경에서 기반한 호감’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걸 크러쉬는 현재 걸그룹 산업을 집어삼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2020년에 컴백한 문별, 드림캐쳐, 이달의 소녀, 에버글로우, ITZY, 로켓펀치, 체리블렛 등의 컴백 기사엔 ‘걸 크러쉬’라는 단어는 절대 빠지지 않으며, 언론은 이를 ‘걸 크러쉬 대전’이라고 칭한다. 현존하는 걸그룹 산업 내 걸 크러쉬 컨셉을 두 부류로 나눠보았다.
첫 번째는 시각적인 ‘걸 크러쉬’에 집중한 케이스다. 사실 ‘여성이 여성에게 반하는 것’에 집중해 컨셉, 가사 등의 타겟 모두 여성으로 맞춰져 있을 때 ‘걸크러쉬 컨셉’이라고 칭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걸그룹 팬덤 내 여성 팬의 비중이 아무리 높아졌다 한들 남성 팬덤을 함부로 지우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다. 때문에 소속사는 스타일링엔 걸 크러쉬의 대표적인 시각적 이미지인 ‘센 언니’ 처럼 보일 수 있도록 집중하되, 사랑에 있어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로 설정했다. 가사의 청자는 남성으로, 소재는 K-POP에서 보편적인 ‘사랑’을 설정함으로써 여성, 남성 팬덤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놓치지 않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두 번째는 '걸 크러쉬'의 어원에 집중해 진취성을 더한 스토리텔링을 부여한 케이스다. 동성 소비자로부터 동경을 이끌어내고자 기획된 컨셉으로,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진취적인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다. 2020년 발매 곡 중 이를 잘 드러낸 걸그룹으로 이달의 소녀와 ITZY를 떠올려봤다. 2월에 컴백한 이달의 소녀의 <So What>은 ‘까마득한 높던 벽 넘어보이’고, ‘비좁은 새장은 No 좀 더 높이 가볍게 skip’하겠다고 말한다. 주변에서 ‘가시가 돋쳐있다’, ‘얼음 같다’라고 평가하더라도 ‘난 나빠 그런데 어쩌라고?’ 식으로 응수한다. ITZY는 데뷔곡부터 3월에 발매한 <WANNABE>까지 ‘내 답은 내가 알’고, ‘난 그냥 내가 되고 싶’다며 시선에 의해 착한 척하기보다는 차라리 이기적인 내가 되겠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강조해왔다. 그리고 두 그룹 모두 공통적으로 'I'm So Bad'라는 가사가 들어간다. 아이러니한 건, 이들이 말하는 'BAD'는 결코 나쁘지 않다. ‘I’m So Bad’ 라는 가사 뒤에는 ‘널 위한 세상의 중심은 너’, ‘굳이 뭔가 될 필요는 없어 난 그냥 나일 때 완벽하니까’와 같이 이 정도로 모범적일 수 있나 싶은 내용이 따라온다.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집착하지도, 증오하지도 않는다. 그저 ‘남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겠다’는 마음가짐뿐인데 ‘나는 나쁘다’고 정의하며 노래를 시작한다.
왜 걸그룹은 이토록 아이러니한 ‘BAD’를 외치게 되었는가? 2019년, 영화, 방송계는 ‘여성 서사’가 주된 트렌드였고, 이는 예능, 서적, 유튜브 등 많은 미디어 산업에 반향을 일으켰다. 이 흐름은 아이돌 산업까지도 이어졌다. 미디어 속 걸그룹은 그 누구보다 BAD라는 단어와 대척점에 서있기 때문에 그들의 ‘BAD’ 서사는 소비자에게 가장 적극적인 피드백이 예상되는 여성서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걸그룹은 잠깐의 무표정도 허락되지 않고, 항상 웃어야 한다. 마음대로 책을 읽거나 핸드폰 케이스를 바꿨다가는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수 있다. 예능에 출연했을 때 웃으면서 넘어가지 않고 말로 받아쳤다가는 ‘예민하다’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만큼 언론과 대중은 걸그룹에게 청렴결백해야 하는 정치인보다도 각박한 기준을 강요해왔다. 때문에 <WANNABE> 속 ‘내 앞가림은 내가 해’라는 말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할 법한 말일 지라도 ‘착한 소녀’를 강요받던 걸그룹이 한다면 ‘나쁘다, 대중에 대한 예의가 없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걸그룹에게 뗄 수 없었던 강요를 철저히 무시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낸 가사라는 점에서 BAD 서사는 걸그룹 산업에서 굉장히 시사적이다.
하지만 ‘BAD’ 서사는 ‘걸 크러쉬’라는 네 글자에 가려져 있다. 필자는 걸 크러쉬 컨셉이라고 귀결되는 수많은 걸그룹의 활동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왔다. 줄곧 ‘걸그룹 가사는 수동적이다.’라는 편견 속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대중으로부터 당시에는 몰랐던 걸그룹의 능동적인 가사의 재발견을 일궈냈으니까. 그럼에도 언론과 대중은 팜므파탈의 캐릭터도, 당당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캐릭터도, 나만의 길을 걷겠다는 다소 시사적인 논점도 ‘걸 크러쉬’라는 네 글자로 요약한다. 수많은 곳에서 ‘걸 크러쉬’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실상 미디어가 집중하는 걸 크러쉬는 아티스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여성의 이례적인 센 모습’일뿐, 이는 대중의 소비 행위가 “헉, 언니 멋있어!”에서 그치게 한다.
동종업계 종사자인 보이 그룹의 경우는 어떨까? 보이 그룹 역시 사랑이라는 익숙한 소재 이외에 ‘나’에 초점을 맞추고 ‘남의 시선과 한계에 무너지지 말라’며 리스너를 응원하는 곡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컨셉은 보이 그룹의 주된 소비자인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 리스너도 공감하고 멋있다고 느끼게끔 한다. 이때 언론은, 그리고 대중인 우리는 보이 그룹에게도 ‘보이 크러쉬’라는 단어를 붙이고, ‘남자도 반한 OOO’라는 타이틀을 걸며 컨셉을 일단락시키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가사 하나하나에 주목하고, 해석하고, 찬양한다.
우리는 걸그룹의 BAD 서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아무리 걸그룹이 "난 나쁘다"라고 노래해도 현실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걸그룹의 목소리를 거친 이야기를 듣고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학생이 힘을 낼 수도, 사사건건 간섭하는 직장 상사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회인이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다. 이처럼 대중이 그들의 서사에 공감하고, 이를 공유하는 매개 행위를 지속하다 보면 생산자인 기획사는 더 풍부하고 구체화한 이야기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걸그룹 산업이 건강해지는 방향성으로 이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더는 걸 크러쉬, 이 간단명료한 네 글자로 요약하기보다는 그들의 목소리에 집중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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