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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포화상태에 코로나19라는 악조건이 더해진 오늘날에도, 설렘을 품은 신인 아이돌 그룹은 계속해서 데뷔하고 있다. 이전 세대 그리고 동시대 그룹들과 차별화된 포지셔닝은 4세대 아이돌 그룹에 선택이 아닌 필수. 소속사는 대중과 케이팝 팬덤의 이목을 끌고자 수출을 공략한 콘셉트나 플랫폼을 활용한 마케팅, 유려한 스토리텔링과 메타버스 활용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공법으로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룹, 위클리를 공부해보기로 한다.
2020년 6월 데뷔한 플레이엠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위클리(Weeekly). 매일 새롭고 특별한 일주일을 선사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이 그룹은 이수진(일), 먼데이(월), 지한(화), 신지윤(수), 박소은(목), 조아(금), 이재희(토) 총 7인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 멤버가 담당 요일에 대응하는 행성 또는 항성의 성주라는 탄탄한 세계관을 설정했다. 기성 하이틴 콘셉트와는 색다른 매력으로 차세대 걸그룹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한 위클리의 색깔을 알아보자.
WE ARE : Tag me
솔직히 말해 나란 애 궁금하잖아? ( ・ω・)ノ
신학기, 새롭게 만난 친구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듯 위클리는 데뷔 앨범 [WE ARE]를 통해 케이팝 가요계에 그들을 소개한다. SNS의 ‘태그(@)’문화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제목의 타이틀곡 <Tag Me(@Me)>는 학생들의 일상을 노래한 펑키한 팝 댄스곡이다. 경쾌한 기타와 베이스 위 활기찬 멤버들의 챈트(chant)가 10대의 수다스러움을 증폭시킨다. 쉬는 시간이면 교실 뒤편에서 ‘Dadadadadada’ 위클벅적 장난치고 있을 것만 같은 위클리의 자유분방한 매력이 잘 녹아 있다.
교복을 입은 소녀 이미지는 당시 평균나이 17세인 위클리의 데뷔 콘셉트로서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지만 f(x)의 <첫 사랑니(Rum Pum Pum Pum)>, 여자친구의 <시간을 달려서>, 러블리즈 <Candy Jelly Love> 등 내로라하는 2, 3세대 걸그룹이 한 번씩은 거쳐 간 콘셉트이기에 식상하다는 평을 피하기 힘들다. 그러나 뻔한 콘셉트를 Z세대라는 타이틀과 연관시킨 위클리는 결코 뻔하지 않은 하이틴 정체성을 구축했다. 학교를 배경으로 순수한 첫사랑을 고백 또는 독백한 타 아이돌과 달리 위클리의 <Tag Me(@Me)>는 ‘솔직히 말해 나란 애 궁금하잖아? / 알려 줄게 내 TMI’, ‘매일 학교 집 학교 집 지루하잖아 / 그럼 책 덮고 일어나 Hurry Hurry’ 라는 가사처럼 이성을 배제한 채 오직 자신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또한 ‘빠짐없이 전부 떠들어봐 너네 Timeline’과 ‘Tag me tag me 지금 나를 불러’ 는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SNS 활용에 익숙한 Z세대를 제대로 노린 가사다. 타이틀곡 외에도 그룹 세계관을 함축하고 있는 <Weeekly Day>, 그루브한 색소폰 리듬이 두드러지는 <Universe>, 청량한 벨 소리에 꿈을 향한 설렘을 담은 <Hello>와 반복되는 학교생활이 동화 같다 말하는 <Reality>까지. 5곡을 담은 첫 번째 앨범은 위클리의 자기소개서라 해도 무방할 만큼 그들이 누구인지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다.
WE CAN : Zig Zag
내 안에 난 정말 몇 명인 걸까? L(・o・)」
두 번째 미니앨범 [WE CAN]은 생기발랄한 10대 매력을 더욱 솔직하게 보여준다. 타이틀곡<Zig Zag>의 통통 튀는 신시사이저, 기타 사운드와 ‘신이나서 웃다가 / 괜히 또 화나 / 내 맘은 왠지 삐뚤 빼뚤’ 10대의 일기장을 옮긴 듯한 가사가 2000년대 초반 하이틴 록 느낌을 자아낸다. 후반부로 달려갈수록 멤버들의 목소리가 쌓이며 보컬 어레인지가 형성되는데, <Tag Me(@Me)>에 이은 합창 파트가 소란한 또래친구 느낌을 배가한다. 교실을 무대로 댄스컬 안무를 녹인 전곡 뮤직비디오에 이어 ‘Zig Zag 이랬다 저랬다가 / 나도 잘 몰라’ 갈팡질팡 대는 심정을 다양한 동아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지한의 모습으로 보여주며 비주얼 요소도 놓치지 않았다. 또한 이 노래는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 교복 의상으로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2019년부터 교복 선택권이 주어진 여학생 고증과 더불어 고질병이었던 걸그룹 무대 의상 논란을 똑똑히 승화시킨 결과물이 아닐까 한다.
수록곡 역시 독특한 매력과 함께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데, 특히 첫 번째 트랙 <언니>는 연장자를 쉽게 동경하는 10대 소녀의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언니처럼 당당하고 멋진 내가 될 거야’ 라는 문장은 Z세대 만연한 인식, 걸크러쉬(girl crush)와 리스펙트(respect)라는 두 단어로 축약할 수 있다. 걸그룹 곡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언니는 f(x)의 <NU ABO>와 브라운아이드걸스(Brown Eyed Girls) <클렌징 크림(Cleansing Cream)> 등의 곡에서 청자로 상정돼 사랑에 관한 조언을 해주거나 이별에 괴로워하는 화자를 위로하는 역할을 했다. 좀 더 최근 곡인 레드벨벳(Red Velvet)의 <Dumb Dumb>에서 되고 싶은 존재를 뜻하긴 하나 사랑에 빠져 어색한 자신과 비교하기 위해 쓰였단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4세대 걸그룹의 언니는 사랑을 배제하고서 발화되는 경향을 띤다. 다만 있지(ITZY) <달라달라> 중 ‘언니들이 말해 / 내가 너무 당돌하대’와 <언니>의 ‘그 선배만 보면 Boom! Crush야’를 비교한다면 화려한 인플루언서(influencer) 이미지 대신 위클리가 택한 솔직한 성장 하이틴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다. <My Earth>는 팀 내 프로듀서 역할인 멤버 신지윤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로 2002년생인 멤버가 환경을 소재로 선정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WE ARE]의 <Reality>에 등장한 MBTI처럼 오늘날 청소년 세대의 일상적인 관심사를 다루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위클리의 세계관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월화수목금토일>과 레트로한 정박 드럼 사운드가 인상적인 팬송 <몰래몰래> 역시 비비드한 앨범 아트에 착붙인 수록곡.
WE PLAY: After School
띠링 ♬ 이따 거기서 보는 거 맞지? (≧∇≦)/
2020년 연말 시상식에서 ‘올해의 브랜드 대상’, ‘2021 대한민국 퍼스트브랜드 대상’, ‘2020 MAMA’ 등 신인상 6관왕을 거머쥔 위클리가 2021년, 교실과 동아리 시간에 이어 방과 후 10대의 일상을 그린 WE 3부작의 마지막 시리즈[WE PLAY]로 컴백했다. 레게와 트랩 비트가 녹아있는 <After School>은 서정적인 단조 베이스와 하강하는 멜로디라인 탓에 지난 활동곡보다 레트로한 팝 무드가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동시에 리스너를 자연스럽게 멤버들끼리의 대화에 초대하는 포맷은 연속적이다.
<Tag Me(@Me)>의 책걸상, <Zig Zag>의 큐브다음으로 선택된 위클리의 안무 소품은 노래 가사에 맞춘 스케이트보드다. 지극히 이국적인 도구지만 몇 년간 트렌드를 선도한 레트로 붐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하이틴을 학습한 대중을 고려할 때 이보다 직설적으로 하이틴을 내세울 만한 무기도 없다. ‘난 이미 교복 치마 대신 체육복 바지’가사에 걸맞게 하교 후 벙거지에 체크무늬 남방과 멜빵바지, 캠코더를 쥐고 하이틴 풀세팅을 마친 위클리. ‘우린 코드가 딱 맞았지 만난 날부터’, ‘친구보단 또 다른 나인 거 같아’ 의 노랫말은 10대 시절 우정이 지닌 절대적인 부피를 강조한다. 위클리가 보여주는 것은 하굣길 친구와 함께하는 소소한 일상이 전부지만 국내 리스너에게 와닿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학업이 학교생활의 주를 이루는 탓에 한국판 하이틴은 <스카이캐슬(2018)> 아니냐는 자조 섞인 여론이 있다. 동경만 하던 해외 하이틴 문화를 K 패치한 <After School>은 추억여행과 대리만족, 기억조작 세 가지 경험을 고루 선사한다. 실수해도 또 덤비고 마는 귀여운 무모함을 R&B로 풀어낸 <Yummy!>, 낙관과 행운을 노래한 <Lucky>,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고 말하는 <Uni>와 우정을 담은 몽환적인 발라드 <나비 동화> 모두 10대의 다양한 감정선을 잘 그려내고 있다. 세 번째 미니앨범은 음원, 음반 모두 자체 최고 기록을 달성했는데, 타이틀곡의 경우 스포티파이 바이럴 차트 글로벌 1위를 달성하고 미국의 <타임지(TIME)>에 이름을 올리는 등 신인으로서 뜻깊은 성과를 이룩했다. 위클리=K-하이틴이라는 하나의 공식을 만들 만큼 임팩트 있으면서 코로나로 PLAY하지 못한 많은 이들을 위로해준 앨범이 아니었을까 한다.
Play Game : Holiday
초대는 내가 할게 준비는 누가 할래? (*^o^)人(^o^*)
위클리는 8월 여름방학 시즌에 딱 맞춰 여행과 추억을 테마로 상큼발랄한 신보 [Play Game : Holiday]를 발매했다. 앨범의 트랙들이 순서대로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데 일주일 내내 기다린 주말여행을 준비하는 <Weekend>, 시동을 걸고 오렌지빛 노을을 달려가는 <Check it out>, 여행의 메인 파티를 만끽하는 타이틀곡 <Holiday Party>, 밤하늘을 바라보며 감성에 젖은 <La Luna>와 여름비를 통해 추억을 회상하는 <Memories of Summer Rain> 트랙 전체가 여름 휴가의 장면을 엮어 놓은 듯해 골라 듣는 재미를 더한다.
파티라는 소재와 비비드한 색감의 타이틀곡 <Holiday Party>는 <After School>부터 시도해 온 레트로 하이틴 콘셉트를 잇고 있다. 뮤직비디오 속 네온사인과 1970년대를 연상시키는 쨍한 패션, 세탁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품 등이 한 편의 하이틴 뮤지컬을 연상시킨다. 게임기 소리 같은 808 베이스와 그루비한 비트가 버무려진 업 템포 팝을 듣다 보면 파티 어딘가 DJ를 만날 것 같은 반면 후렴구 직전 멤버들의 목소리가 두드러지는 브릿지 파트에선 챈트 중심의 타이틀곡에 비해 훨씬 신비롭고 성숙한 분위기가 풍긴다. 여름과 떼놓을 수 없는 파티, 대표적으로 소녀시대 <PARTY>와 트와이스 <Dance The Night Away>가 떠오른다. 여름-파티의 환상적 조합을 바다 앞에서 시원하게 풀어낸 두 그룹과 비교할 때 실내를 배경으로 한 <Holiday Party>는 좀 더 영(young)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다. 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홈파티와 친구 집에서 즐기는 한국식 잠옷 파티 두 이미지 모두 공존한다는 점에서 위클리의 의도가 계획대로 들어맞은 듯싶다. 푸릇푸릇한 색감의 4집 앨범은 음악적으로도 많이 성숙해졌는데, 4번과 5번 트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La Luna>는 달과 지구를 활용해 닿을 수 없는 짝사랑을 묘사했으며 <Memories of Summer Rain>에선 빗소리를 들으면 떠오르는 누군가에 대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퓨처 베이스가 형성한 우주와 장마철의 분위기가, 여름 그리고 방학이기에 아련하게 느껴지는 정서를 강조해준다. 우정과 일상을 넘어 사랑을 깨달은 소녀의 성장이 돋보이는 노래다.
© 플레이엠엔터테인먼트
청순 콘셉트의 대명사였던 에이핑크(Apink)의 소속사가 10년만에 선보인 위클리는 소녀상을 완전히 탈피하지 않았다. 발랄함과 순수함으로 수식되는 전형적인 걸그룹 느낌을 잃지 않으면서도 밀레니얼 세대가 환영하는 주체성을 더해 독자적인 소녀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추상적인 사랑이나 원대한 미래를 노래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은 돌아오지 않아(After School)’라며 쉬이 지나쳤던 10대의 일상성(日常性)을 친숙한 하이틴 프레임에 담았다. 그들이 그리는 K-하이틴은 콘셉트만을 차용해 아이돌 멤버를 하이틴 영화 속 주인공으로 전시하는 것이 아니다. 틴크러쉬(Teen Crush)를 넘어 위드틴(With Teen), 나아가 노래를 듣는 모든 세대가 저마다의 청소년기를 자각하고 감상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허락되지 않은 줄로만 알았던 하이틴 감성을 즐기게 해준 위클리가 앞으로 어떤 음악을 통해 Z세대의 대변인이 되어줄 지 기대가 앞선다.
P.S. 위클리가 걸어온 길을 <타이타닉(Titanic, 1997)>의 명대사 ‘Make it count’를 빌려 요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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