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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assic: 케이팝, 클래식에 빠지다(2)

클래식은 고리타분하지 않은 음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클래식을 접하는 것이 이전보다 쉬워진 게 한몫했다. 유튜브에 클래식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클래식 모음 동영상들은 비교적 차분하고 감미로운 음악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해하기 어렵거나 특별히 뾰족한 부분이 없는 이러한 음악들은 피로한 귀에 휴식을 안겨주고 싶어 하는 대중들의 니즈를 충족한다.


클래식을 청취하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은 넓다. 공부를 하거나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 클래식을 틀어두는 라이트한 청취자가 있는 반면, 음악 안에 담긴 음표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세밀하게 감상하는 헤비한 청취자 또한 존재한다. 가볍게 클래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듣는 작품의 특징이 있다. 바로 대중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적인 작품들은 클래식 모음 동영상에 자주 등장할 뿐만 아니라 TV 광고에도 많이 삽입된다. 한화그룹 광고에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이 사용되었고, 쿠키런 킹덤 광고에는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 아리아’가 사용되었다. 또 시몬스 침대 광고에는 에릭 사티 <짐노페디> 중 1번이, 휴테크 광고에는 슈베르트 <악흥의 순간> 중 3번이 사용되었다. 듣기 편하기에 영상과 잘 어우러진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렇게 듣기 편한 대중적인 클래식은 아이돌 음악에도 많이 샘플링되고 있다. 2022년 가을에 작성한 글에선 블랙핑크(BLACKPINK) - <Shut Down>, 레드벨벳(Red Velvet) - <Feel My Rhythm>, 더보이즈(THE BOYZ) – <도원경 (Quasi una fantasia)>, 신화 - <T.O.P. (Twinkle Of Paradise)> 등 네 곡을 소개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2024년 여름에 도달한 지금, 또 어떤 곡들이 클래식을 샘플링해 사용했을까? 이번 글에선 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온앤오프 공식 X(구 트위터)

①    온앤오프(ONF) - <Bye My Monster>

샘플링 곡: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S. Rachmaninoff | Symphony No.2, Op.27: III. Adagio)

지난 4월 8일 발매된 온앤오프의 12번째 앨범 [BEAUTIFUL SHADOW] 타이틀곡이자 온앤오프에게 두 번째 음악방송 1위를 안겨준 곡, <Bye My Monster>. 뛰어난 프로듀싱 실력으로 ‘황토벤(황현+베토벤)’, ‘황버지(황현+아버지)’ 등의 별명을 얻은 프로듀서 황현이 작곡∙작사∙편곡에 참여했다. 한양대학교 작곡과 출신인 황현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지난 2017년 발매된 데뷔 앨범 [ON/OFF]부터 온앤오프의 모든 앨범을 프로듀싱해왔다. 그만큼 멤버 개개인의 특성과 장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황현은 이를 잘 활용하여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켰다. 그가 제작한 대표적인 곡으로는 <사랑하게 될 거야 (We Must Love)>, <Beautiful Beautiful>, <Why> 등이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온앤오프의 음반 프로듀싱을 담당한 황현은 [BEAUTIFUL SHADOW] 발매 전 스포티비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앨범 작업은 역대급이다. 데뷔 앨범 이후로 모든 작업이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역대급으로 경신을 했다.”, “이 곡으로 인해 온앤오프가 화제성이 굉장히 많이 생겼으면 좋겠고, 그게 가능하다면 이 곡의 힘이 현재의 K팝신의 분위기를 바꿀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이 음악은 요즘 나오는 음악이 아니라서 더 재밌는데, 그렇다고 해서 올드하거나 그렇지는 않다는 게 재밌다”, “사람들이 온앤오프를, 아이들의 실력을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가끔씩은 화가 난다. 온앤오프를 몰라주는 게 화가 난다. 결국 음악의 힘은 온앤오프로 느껴보고 싶다.”라고 발언하며 곡의 완성도에 대한 기대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매된 <Bye My Monster>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클래식한 분위기와 강렬한 밴드 사운드가 혼재하는 팝 댄스 곡 <Bye My Monster>은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을 샘플링했다. 코러스 가사 “나를 구원하려 한다면 / 내가 절망을 더 느끼게 놓아줘 / 안녕”과 마지막 가사 “너를 탐한 죄로 나 저주에 빠진다면 / 한 찰나라도 좋으니 널 가지고 싶었는데 / 환상이 될 수 없는 우리 / 이어갈 수 없는 이야기 마침내 / 안녕” 뒤에 이어져 나오는 3악장의 주제 선율은 곡의 극적인 분위기를 배가한다.


떠나야만 하고, 끊어내져야만 하는 절망스러움, 그리고 가혹한 재앙이 되어버린 사랑을 노래하는 온앤오프의 <Bye My Monster>. 곡을 한층 더 깊게 느껴보고 싶다면 지난 4월 11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최초로 공개된 <Bye My Monster> 무대를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100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꾸민 이 무대는 온앤오프만의 분위기와 감정을 가중시킨다.


[*] Note: 에릭 카먼(Eric Carmen)의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 또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의 주제 선율을 차용했다. 해당 작품이 다른 곡에서는 어떻게 활용됐는지 궁금하다면 이를 감상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투어스 공식 X(구 트위터)

②    투어스(TWS) - <Oh Mymy : 7s>

샘플링 곡: 로베르트 슈만 어린이 정경 제1번 미지의 나라들 (R. Schumann | Kinderszenen Op.15 No.1 Von Fremden Landern Und Menschen)

지난 1월 2일 발매된 투어스의 미니 1집 선공개 싱글 <Oh Mymy : 7s>. 데뷔 20일 전 공개된 이 곡은 특이하게도 멤버들의 프로필이 정식으로 업로드되기 전에 발매되었다. 이러한 신인의 패기를 보여주듯 곡의 부제 ‘7s’에는 ‘단 7초 안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다’는 뜻이 담겨있다. 전(前)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걸그룹 프리스틴(PRISTIN) 멤버 성연과 Mnet <고등래퍼 2> 우승자 김하온이 작사에 참여하고, 범주(BUMZU)가 메인 프로듀서를 담당한 이 곡은 ‘7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매김하겠다’는 투어스 멤버들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투어스는 데뷔 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도 그럴 것이, 투어스는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에서 세븐틴(SEVENTEEN)이 데뷔한 지 약 8년 8개월 만에 배출된 보이그룹이기 때문이다. 자체 프로듀싱 능력과 뛰어난 퍼포먼스 및 가창 실력으로 유명한 세븐틴의 첫 번째 직속 후배 그룹이기에 이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대중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은 투어스는 이에 부응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이겨내고 성공적으로 선공개 싱글을 발매했다. 음원 발매와 동시에 공개된 <Oh Mymy : 7s> 스페셜 영상은 유튜브에 공개된 지 약 13시간 만에 10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신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놀라운 기세를 보여줬다.


데뷔 전 선공개 싱글이라는 것이 이 곡의 가장 큰 특징이지만, 클래식 작품을 샘플링했다는 점 또한 이 곡을 언급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투어스는 곡의 도입부에 로베르트 슈만 <어린이 정경> 중 1번 ‘미지의 나라들’을 삽입했다. 슈만의 유년 시절에 대한 동경을 나타낸 모음곡 <어린이 정경>은 본래 피아노 소품집이다. 따라서 ‘미지의 나라들’ 또한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이 정석이나, 투어스는 이를 현악기를 사용해 편곡했다. 그래서인지 투어스의 곡에 담긴 ‘미지의 나라들’ 중 일부 선율은 기존 연주보다 조금 더 경쾌한 느낌을 띈다.


연주가 10초가량 이어졌을 즈음 투어스는 ‘안녕하세요 Time / Roller coaster ride 온몸이 Z Z Z’라는 가사로 곡의 분위기를 단번에 바꿔놓는다. 앞서 등장한 ‘미지의 나라들’ 선율을 들을 땐 곡의 감정선이 전반적으로 잔잔하려나 싶었는데, 순식간에 강렬하고 에너지 넘치는 곡으로 반전되다니. 이뿐만 아니라 곡이 재생되는 내내 이어지는 다양한 변주와 다채로운 사운드 또한 집중해 볼 만한 포인트다. 독특하면서도 가히 실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곡은 투어스의 자신감을 강력히 표출한다.


클래식을 샘플링하여 곡에 차용하는 것은 어쩌면 큰 모험일 수도 있다. 특히 활용하려는 곡이 그다지 대중적이지 못한 곡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익숙하지 않은 선율이기에 청자의 집중력을 흩트려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투어스는 대범하게 슈만의 <어린이 정경> 중 ‘미지의 나라들’을 곡에 삽입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신인만의 패기가 엿보이는 <Oh Mymy : 7s>는 퍼포먼스 영상과 함께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미지의 나라들’을 샘플링한 부분과 그 뒤에 이어져 나오는 파워풀한 부분의 안무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는 것이 감상 포인트가 될 것이다.



/=레드벨벳 공식 X(구 트위터)

③    레드벨벳 - <Birthday>

샘플링 곡: 조지 거슈윈 랩소디 인 블루 (G. Gershwin | Rhapsody in Blue)

2022년 발매된 앨범 [The ReVe Festival 2022 – Feel My Rhythm] 타이틀곡 <Feel My Rhythm>에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샘플링하며 많은 화제를 모았던 레드벨벳. 이 곡이 발매된 같은 해 블랙핑크 - <Shut Down>, (여자)아이들((G)I-DLE) - <Nxde> 등 클래식을 샘플링한 곡이 여러 개 발매된 만큼 레드벨벳은 클래식 샘플링 열풍의 선두주자라고 칭할 수 있다.


자신들이 불어온 이러한 열풍을 탄 레드벨벳은 [The ReVe Festival 2022 – Feel My Rhythm] 발매 이후 8개월 만에 다시 한번 클래식 작품을 샘플링한 곡으로 컴백했다. 지난 2022년 11월 발매된 [The ReVe Festival 2022 – Birthday]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나와 함께라면 매일이 생일처럼 즐거울 것’이라는 당찬 고백과 좋아하는 상대의 생일로 돌아가 상상하던 모든 소원을 이뤄주며 잊지 못할 하루를 선물하는 내용을 담았다는 이 곡은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바에 걸맞게 리드미컬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랩소디 인 블루>에서 어쩌만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선율을 도입부에 삽입한 <Birthday>. 기존의 다른 클래식 음악들과는 달리 재즈적 요소가 가미된 <랩소디 인 블루>는 극장에서 공연의 막이 오를 때, 영화 시작 전 영화의 제목이 등장할 때 재생될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두 상황의 공통점은 뒤에 이어질 일을 몹시 기대하게 만든다는 것인데, 생일 또한 이러한 특징을 갖추고 있지 않을까 싶다. 생일을 맞이한 사람은 자신을 위해 준비된 케이크와 선물, 그리고 오직 자신을 축하해 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모습을 매우 기대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생일’이라는 뜻을 가진 <Birthday>는 이러한 감정을 잘 담아낸 곡이다. 잊지 못할 하루를 선사해 주려 하는 사람과 이를 선물받는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가사에 녹여낸 <Birthday>는 듣는 이들이 생일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일을 맞이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만큼 경쾌하고 다채로운 기분을 선물해 주는 이 곡은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또한 앞으로 레드벨벳이 어떠한 클래식 작품을 샘플링해 우리에게 기쁨을 줄까 기대하게 만든다.


[*] Note: 클래식을 샘플링한 레드벨벳의 또 다른 곡이 궁금하다면 같은 앨범에 수록된 <BYE BYE> 또한 청취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샘플링한 이 곡은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며 더 이상 사랑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을 담았다. ‘눈뜨면 이 모든 게 / 사라져도 어때 / 두 눈을 맞춘다면 / 매일이 또 Birthday’라는 가사를 통해 너와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친 <Birthday>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곡이니 이 둘을 비교해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기존에도 클래식을 샘플링하여 사용한 아이돌 음악은 꽤나 많이 존재했다. 그렇지만 이 중엔 <엘리제를 위하여>와 같이 매우 대중적인 클래식을 샘플링한 곡이 대다수였다.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을 파악한 걸까? 현재 아이돌이 샘플링하는 클래식 작품은 이전보다 그 종류가 매우 많아졌다. 클래식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생소할 이름의 작곡가와 곡들이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돌 음악과 클래식 작품 두 가지 모두 즐겨 듣는 나로서는 매우 즐거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앞으로도 아이돌 음악에 클래식 작품이 많이 샘플링되어 이가 대중들이 클래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길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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