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친 인생의 젊은 시절을 뜻하는 ‘청춘(靑春)’은 케이팝 씬의 단골 모티프다. 아이돌 멤버와 팬층 대부분이 속해 있는 연령대라 공감을 부르기 쉬울뿐더러 젊음과 위태로움을 감각적으로 묘사한 청춘 콘셉트는 꽤나 낭만적으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청춘은 찬란하기만 한 미디어 속 모습과 다소 거리가 멀다.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현실의 청춘을 위해 노래해 온 그룹이 있으니, 바로 ‘세븐틴(SEVENTEEN)’이다.
ⓒ Pledis Entertainment
7년 차 그룹답게 세븐틴은 매우 넓은 음악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당장 타이틀곡의 콘셉트를 떠올려보라, 다섯 손가락으로 세기 힘든 빛깔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나. <아낀다>-<만세>-<예쁘다>로 이어지는 소년 3부작에서 첫사랑의 설렘을 노래한 그들은 액션 영화를 연상시키는 라인, <붐붐>-<박수>-<HIT>에서 열정 가득한 청년 이미지로 성장했다. 이 외에도 서정성의 극치를 보여준 EDM 장르의 <울고 싶지 않아>, 전공인 청량으로 무장한 <어쩌나>, 어반 퓨처 R&B인 <Home>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왔다. 2019년 정규 3집 [An ode]에서는 묵직하고 섹시한 <독: Fear>을 통해 ‘청량돌’의 수식을 넘어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2020년엔 복고풍 타이틀곡을 잇따라 선보였는데, 2000년대 스타일의 힙합 장르를 재해석한 캐주얼 분위기의 <Left & Right>,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레트로 무드가 흠뻑 묻은 스윙 재즈 리듬의 <Home ; Run>이 그 주인공이다. 7월 활동을 마무리한 <Ready to love>에서는 같은 사랑을 주제로 하되 데뷔 초 10대 소년의 서툴고 풋풋한 모습에서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담아냈다.
세븐틴은 공식적인 세계관의 부재 덕분에 수많은 콘셉트를 섭렵할 수 있었지만 비공식적인 청춘 세계관만큼은 확고히 유지하고 있는데, 멤버 승관은 청춘을 두고 죽을 때까지 느끼고 싶은 감정이자 ‘세븐틴’이라고 정의하며 팀컬러에 대한 각별한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다. 다채로운 버전으로 청춘의 단상을 담은 타이틀곡과 달리 그들의 수록곡은 유독 청량(淸亮)한 어투로 막막한 현실을 살아가는 또래 친구들을 위로해왔다. 이 시대 모든 청춘이 꼭! 들었으면 하는 세븐틴의 청춘 헌정곡 4가지를 추천한다(발매 앨범 순).
힐링
2016년 7월 [Love&Letter] 리패키지 앨범에 수록된 트로피컬 하우스 풍의 <힐링>은 제목대로 힘든 일상에 지친 팬들을 힐링시켜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탄생한 팬송이다. 둥둥거리는 드럼 베이스와 스트링 선율이 통통 튀고 신나는 분위기를 구현해 여름에 딱 듣기 좋은 곡.
아시아 투어 당시 촬영한 뮤직비디오 속 청춘을 만끽하는 세븐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싶어진다. 코로나가 끝나기 전까지, 대신 이 노래를 들으며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보는 것은 어떨까. 각자의 방식으로 달콤한 힐링을 즐겨보자.
잠시 쉬어가도 돼요 아무 생각하지 말아요
Yeah So don't
Don't stop this healing
Now dive in dive in dive in dive in ooh hoo
쉼이란 바다에 몸을 던져 푹 쉬어도 돼요
이 노래의 주제와 맞닿아있는, 작년 발매한 앨범 ;[Semicolon]은 잠시 끊었다가 이어 설명할 때 쓰이는 문장부호를 앨범명으로 선보이며 ‘쉼’을 노래한다. 발매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멤버 도겸은 “청춘들에게 꼭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지 않아도 된다”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위로와 응원을 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또한 휴식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 밥을 먹거나 여행을 가는 등 모든 것들이 소소한 쉼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들이 제시한 쉼표는 <힐링>의 가사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바쁘게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열심히 달려왔다면 하루쯤은 아무 생각 없이 쉼이란 바다에 다이빙해도 된다고, 나만의 바다를 수영해도 좋다고 말하며.
지친 하루 끝에 수고했단 작은 그 한마딘
훗날에 기억될 오늘의 그림 같은
지금의 추억이 될 거예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자신을 가혹하게 옥죄는 청춘들이 많다. 아주 조그마한 것이든 좋으니 하루의 끝자락에서 스스로 이룬 것들에 감탄하며 수고했다고 말해주자. 잠시 멈춰 서서 내뱉은 그 한 마디는 분명 당신의 무한한 전진에 박차를 가해줄 것이다.
SIMPLE
<힐링>과 같은 앨범에 수록된 <SIMPLE>은 후렴에서 반복되듯 ‘나를 숨쉬게 하는 모든 것이 간단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이 곡은 프로듀서 범주와 함께 세븐틴의 음악 세계를 책임지고 있는 멤버 우지의 자작곡이자 솔로곡으로, 그의 아련한 감성을 차근히 정리한 교과서 같은 노래다. 팬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우지의 ‘자체 오토튠’ 목소리는 청량감 있으면서도 우유 한 컵 첨가한 듯 달달한 맛이 있어 사이다보다 밀키스에 빗대고 싶다.
여름과 가을 사이 어디쯤 창문을 열고 선선해지는 기온을 느끼며 <SIMPLE>을 들어보자. 청춘이기에 겪는 복잡한 상념이 차곡차곡 정리될 것.
난 먼지만도 못한 걸 잘 알고 있지만
쉬운 일 하나 없는
출구 없는 미로인 듯한 세상
도약의 기로에 선 청춘은 항상 ‘가시적인 성과’라는 숙제를 짊어지고 있다.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붙잡고 끙끙대다 보면 가사처럼 먼지보다도 못한 존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가사 속 ‘출구’는 왼쪽 오른쪽 그 어디에도 출구가 없다고 느끼는 청춘에게 힘차게 나아가자 말하는 <Left & Right>의 메시지와 연결된다. 유쾌하게 풀어낸 가사에서 <SIMPLE>의 자책감을 파워풀하게 해소했으면 하는 바람이 느껴진다.
행복은 그냥 말만 있는 거고
모두가 원하는 Dream일 뿐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 하지만 생각할 겨를도, 정의할 체력도 없는 이들에게 행복은 사치에 불과하다. 모두가 추구하지만 닿지 못하는 꿈일 뿐이라며 소회를 밝히는 이 구절은 화려한 행복을 전시하는 대신 불행에 공감하며 청춘에게 다가가고 있다.
Thinkin’ about you
2018년 2월 발매한 스페셜 앨범 [DIRECTOR'S CUT] 1번 트랙의 <Thinkin’ about you> 역시 ‘세븐틴 표 청량’하면 빼놓을 수 없는 노래로 한 번만 들어도 흥얼거리게 되는 쉬운 구성의 캐치한 멜로디가 매력적이다. 더욱이 콘서트 무대를 본다면 후렴 ‘I’m Thinkin’ about you’ 파트에서 13명의 멤버가 일렬로 추는 귀염뽀짝한 안무가 자꾸 눈앞에 아른거릴 것이라 자부한다. 그만큼 중독성과 청량감이 굉장한 수록곡.
이 곡은 소개한 다른 노래와 달리 직설적으로 청춘을 위로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추천하고픈 이유는, 필자가 청춘을 살며 느낀 감정이 잘 반영된 가사 때문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대중교통 안에서 이 곡을 들으며 예쁜 가사를 곱씹어보는 건 어떨까. 짜증과 고됨이 조금이나마 지워지리라.
앞에서는 바보 같았던
뒤에서만 용감했었던
그렇게 그저 그랬던 내가 Yeh
지금도 그닥 다르진 않아
달라진 건 딱히 없지만
그래도 그냥 오늘은 오늘은 오늘은
많은 청춘이 어른스럽지 못한 자신에 실망하곤 한다. 하지만 어떻게 단번에 비약적으로 변화하겠는가. 청춘은 두 모습이 혼재돼 있기에 아름다운걸. 모든 이들이 위 가사처럼 ‘달라진 건 딱히 없는’ 지극히 정상적인 자신의 청춘을 사랑했으면 한다.
내 맘을 넘으며 너에게 O E O E O
깊은 기억 속에 우리 둘 모습은
어리긴 어렸지 참 예뻤던 날에
작은 꽃잎 하나둘 우리 추억 하나둘
하나하나 다 잊지 않고서
이 노래는 2016년 세븐틴에게 첫 1위의 영광을 손에 쥐여준 3집 <예쁘다>의 연장선 위에 있다. 공식적으로 밝힌 바는 없으나 ‘하루 종일 세고 있어 꽃잎만’ 의 구절이 ‘작은 꽃잎 하나둘’ 로 이어지는 점 그리고 ‘너 예쁘다’ 파트의 안무를 그대로 재현하는 데에서 추측할 수 있다. 새벽에 물을 마시면서 고백을 연습하던 <예쁘다>의 10대는 <Thinkin’ about you>에서 20대가 돼 ‘어리긴 어렸지 참 예뻤던 날’ 이라며 풋풋한 그 시절을 추억한다.
“과거는 그립고, 미래는 두렵고, 현재는 복잡하다”라는 말이 있다. 하나둘 나이를 먹어가는 20대라면 수긍할 문장이 아닐까. 아련 필터가 씌워진 과거는 아름답게만 보이는 한편 당장 앞에 놓인 현재와 미래는 영 어두컴컴해 보인다. 특히 코로나 19와 맞물리며 많은 사람이 추억에 기대는 자신을 발견했을 것이다. 세븐틴은 3월 발매한 일본 세 번째 싱글 <히토리쟈나이(ひとりじゃないから)>에서 회상에 머물러 있던 청춘을 일으켜 세운다. ‘思い出の中 君のこと 探しているとき(추억 속에서 널 찾고 있을 때면) / 明日へ踏み出そう そう思えるから(내일을 향해 나아가자는 생각이 드니까)’ 의 구절은 추억의 힘을 발판으로 다시금 미래를 향해 달리는 모습을 제시한다. 삶이 버거울수록 추억 속 행복은 더욱 진해지지만, 과거는 곧 현재의 이형임을 알고 있기에 잔인하게도 우리는 마냥 쉴 수 없다. <Thinkin’ about you>가 표면적으로 사랑을 말함에도 불구 필자에게 치열한 오늘이 훗날 예쁜 어제로 남길 바라는 청춘 찬가로 느껴지는 이유다.
같이 가요
우지를 칭하는 또 다른 수식어는 ‘투니버스가 낳은 최고의 작곡가’다. 세븐틴의 명곡 리스트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 이후 획득한 별명으로, 어린 시절 즐겨본 투니버스 애니메이션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들이 동시대의 향수를 공유한 리스너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널리 쓰이게 됐다고. <같이 가요>는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와 같은 J-ROCK 장르로 2020 <SEVENTEEN in CARAT LAND>에선 두 곡을 연결해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심장 박동처럼 쿵쾅대는 드럼 비트가 기승전결 뚜렷한 일본 애니메이션 OST 느낌을 증폭시키는데 케이팝 팬들은 두 곡을 두고 “벌써 애니 한 편 다 봤다”며 입을 모은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 등의 일본 애니메이션 예고편과 합성한 팬메이드 뮤직비디오에서 상당한 싱크로율을 확인할 수 있다.
데뷔 후 첫 밀리언셀러를 달성한 [헹가래]는 타이틀곡 <Left & Right>를 포함 인생을 여행에 빗댄 <My My>, 완벽한 어른이 되지 못한 지금도 괜찮다고 말하는 <어른 아이> 등 청춘을 응원하는 노래로 꽉 차 있어 ‘청춘의, 청춘에 의한, 청춘을 위한’ 앨범이라고 불린다. 쟁쟁한 후보 중에서도 마지막 트랙 <같이 가요>는 청춘이란 함께할 때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가사와 특유의 휘몰아치는 청량감으로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든지 벅차올라도 괜찮은 혼자만의 새벽, 노동요 삼아 이 노랠 듣다 보면 꿈을 향해 달려 나가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줄어들고
하고픈 얘기들은 늘어나고
각자의 고민을 꺼내고서
나이를 하나둘씩 세어 가는 우리들은
나를 꺼내어 보는 시간의 벽에 부딪혀
생일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20대가 됐다면 공감할 도입부다. 새 학기가 되면 자연스레 친구를 사귀던 학창 시절과 달리 성인의 관계는 대부분 일정한 목적하에 형성된다. 관계에 대한 회의 그리고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이 원망스러운 청춘의 심정이 잘 반영돼 있다.
꺼내 볼래 마음의 나침반을 Yeh
흔들리는 나침반이 답답해도
우리 함께 라면
다 알지 못해도 다 알 수 있어요
투니버스 세계관을 공유한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의 ‘너 있는 그곳을 나는 몰라도 / 내 마음 나침반 곧장 따라서’ 가사와 이어지는 부분. 넓은 벌판 홀로 길을 헤매다 나침반을 꺼내 보지만 자침은 흔들리기만 한다. 벌판은 인생을, 자침은 진로를 포함 결정하기 힘든 수많은 고민을 은유한다. 그렇지만 제목이 말하듯 방황하는 청춘은 당신 혼자가 아니다. 도착하기 전까지 잘 지내고 있어 달라 외치던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의 노랫말은 결국 만나는 데 성공해 함께 길을 찾아가는 <같이 가요>에서 완성된다. 경쟁은 혼자 하는 것이지만 청춘은 절대 혼자서 그릴 수 없다. 함께이기에 아름다운 시절임을 망각한 채 숨 가쁘게 살아왔다면 나를 둘러싼 주변에 눈길을 줘보자. 함께한다면 절대 길을 잃지 않고 똑바로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으니까.
ⓒ Pledis Entertainment
평균 나이 열아홉의 소년들은 어엿한 스물다섯의 남자로 자랐다. 지난 7월, 세븐틴은 13명 전원 소속사 플레디스와 조기 재계약을 체결했다. 케이팝 그룹의 징크스로 불리는 ‘마의 7년’을 타파해 화제를 불러모은 그들은 “13명 모두 서로를 향한 믿음과 다져 온 견고한 팀워크로 함께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며 “좋은 음악과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새롭게 채워질 제2막이 기대되는 가운데 매 앨범 자리를 지키며 지친 청춘들을 달래주는 세븐틴만의 청량한 위로 역시 끊이지 않길 소망한다.
p.s. 미처 소개하지 못한 필자의 최애 수록곡은 미니 3집 [Going Seventeen]의 <Beautiful>이다. 아쉬운 마음에 가장 좋아하는 파트 ‘우린 사랑을 절대 쉬지 않아’ 를 개사해 봤다. ‘세븐틴은 청춘을 절대 쉬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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