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캣츠아이 공식 X
하이브의 첫 미국 현지화 걸그룹 ‘캣츠아이(KATSEYE)’가 베일을 벗었다. 디지털 싱글로 데뷔하며, 대형 기획사 소속치고 다소 약한 행보를 보였던 캣츠아이는 지난 8월 16일 미니 앨범 <SIS (Soft Is Strong)>를 선보이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현지화 그룹이 케이팝 산업의 새로운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 것이다. JYP 엔터테인먼트의 니쥬, SM 엔터테인먼트의 NCT WISH, 하이브의 &TEAM 등 현지화 그룹들이 연이어 좋은 성과를 내면서, 현지화 전략의 비전과 가능성은 점차 확신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유독 캣츠아이의 데뷔만큼은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안겼다. 앞서 언급된 그룹은 모두 일본 현지화 그룹들로,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서는 현지화 전략이 긍정적인 성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우리가 앞으로 더욱 개척해야 할 시장에서도 현지화 그룹이 통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미지수다. 미국 시장을 타깃으로 출범한 현지화 그룹이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 더러, 서양인이 케이팝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것에 대한 묘한 이질감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출처: 캣츠아이 공식 X
미국 시장에서의 현지화 성공 가능성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대형 기획사들은 미국 현지화 그룹 제작에 많은 열의를 쏟고 있고, 중소 기획사들도 이에 가세를 더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미국 시장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낸 경험이 있는 하이브의 첫 미국 현지화 걸그룹이 선보일 행보는 케이팝 산업의 중요한 지표가 될 수밖에 없다. 미니 앨범을 발매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그룹의 성과를 이야기하는 것은 섣부를 수 있지만, 지금까지의 행보와 이에 대한 필자의 의견을 덧붙이며 캣츠아이가 케이팝 산업에 불어올 새로운 바람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어딘가 낯설지만 친숙한 캣츠아이의 음악
케이팝 본연의 색깔을 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캣츠아이의 노래는 케이팝의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다. 기존 케이팝 걸그룹의 노래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출처: KCON LA 2024 캣츠아이 무대 캡처본
물론 이질감을 완전히 상쇄했다고 보긴 어렵다. 케이팝의 시스템 속에서 트레이닝 받고 앨범이 제작됐다 하더라도, 발성과 그들이 풍기는 바이브의 차이는 신선함과 낯선 감정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 때문에 캣츠아이의 성공 여부에 대한 입장은 지금도 확연히 갈리지만, 다국적 그룹이 주는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음악에서 돋보인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락, 디스코 등 장르성이 뚜렷한 음악을 선보일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지만, 캣츠아이는 가장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팝 기반의 이지리스닝 곡을 선보였다. 이는 음원 성적을 의식한 안정적인 선택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음악에서 완전히 K를 지우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도 해석해 볼 수 있다.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최근 음악 방향성을 캣츠아이의 음악에도 녹여냄으로써, 이들이 케이팝의 일원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케이팝 트렌드에 대한 고려 없이 미국 음원 차트만을 쫓기 급급했다면, 이들이 케이팝의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평가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기에, 그룹의 정체성을 각인 시키는 측면에서는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정 그룹의 성공 여부를 떠나 현지화 전략의 최종 목표는 결국 케이팝과 제작 시스템을 세계화하고 주류로 만드는 것에 있기에 이러한 측면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미국을 타깃으로 하는 현지화 아이돌 중 가장 팝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앞으로의 음악도 충분히 기대해 볼만 하다.
출처: 캣츠아이 ‘Debut’ 뮤직비디오 캡처본
미국 현지화를 선두하는 그룹답게, 도전적인 이미지는 캣츠아이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봐도 무방하다. 이를 의식하듯, 캣츠아이는 데뷔 싱글 앨범인 ‘Debut’에서 강렬한 사운드와 함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선보였다. ‘한번 날 좋아한 이상, 다시 날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대담한 가사가 등장하기도 하며, 자신들이 깨고 나가야 하는 편견과 한계를 하이틴 스타처럼 표현한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SIS(Soft Is Strong)>의 타이틀 곡 ‘Touch’와 ‘My Way’는 ‘Debut’과는 달리 중독성 있는 사운드에 부드러움을 가미했지만, 멤버들의 강한 의지가 담긴 가사를 이어감으로써, 캣츠아이의 도전을 콘셉트화 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출처: 캣츠아이 공식 X
가벼운 음악 속 당당함을 돋보이는 콘셉트는 대중적인 만큼, 취향이 갈리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캣츠아이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는 별개로, 이들 그룹만의 개성과 콘셉트 방향성에 대한 의문은 제기되고 있다. 하이브의 첫 미국 현지화 걸그룹이라는 타이틀 외에, 캣츠아이를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키워드가 없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런 반응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바다. 캣츠아이의 노래에서 기존 하이브 소속 걸그룹들의 잔상이 많이 보일 뿐더러, 캣츠아이만의 개성적인 키워드가 부재한 것은 사실이다. 이들의 노래를 들었을 때 기존 걸그룹들이 떠오를 만큼 케이팝스럽다는 평가는 칭찬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케이팝을 주류 음악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K라는 수식어에 깊게 매몰되거나 특별한 차별점을 만들지 못한 채 애매한 포지션에 위치하는 것은 결코 이들이 원하는 방향성은 아닐 것이다. 때문에 캣츠아이만이 보여줄 수 있는 콘셉트를 구축하고, 다양한 음악 장르에 대한 시도를 보여주는 것이 이들의 과제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케이팝 산업, 그 자체를 프로모션 하다
캣츠아이의 프로모션에서 특별히 두드러지는 점은 없다. 그러나 케이팝의 프로모션 트렌드를 온전히 따라간 것이 오히려 캣츠아이의 강점이 되었다는 평가다. 그룹의 탄생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음원 선공개 등 다양한 프로모션을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 각기 캣츠아이에게 주는 이점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편이다.
출처: 넷플릭스 / 팝스타 아카데미: KATSEYE 공식 예고편 캡처본
필자는 캣츠아이의 프로모션이 그룹 홍보와 케이팝 산업의 주류화,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전략적이라 느낀 바 있다. 앞서 언급했듯, 현지화 전략의 최종 목표는 케이팝의 방법론을 세계화하고 현지에 안착시키는 것에 있다. 케이팝의 제작 시스템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아마 연습생 트레이닝 제도일 것이다. 케이팝 아티스트를 꿈꾸는 지망생들은 학창 시절부터 기획사에 소속되어 연습에 매진한다. 케이팝 아티스트의 무대가 높은 퀄리티와 합을 자랑하는 것 또한 연습생 시절부터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는 이를 어린 학생들을 착취하는 시스템으로 보기도 하지만, 케이팝의 차별성은 연습생 문화를 기반으로 한 육성 시스템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 외에도 케이팝 아티스트는 일반적인 가수들보다 엔터테이너로서의 모습이 더 엄격하게 요구된다는 점, 대중을 사로잡는 것만큼이나 팬덤 문화도 중요하다는 점 등 케이팝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과 극명한 문화적 차이를 띠고 있고, 자유를 강조하는 서양 사회에서는 특히나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사항이기도 하다.
출처: 위버스 / 넷플릭스
필자는 캣츠아이가 이러한 측면을, 프로모션을 통해 잘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캣츠아이는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팀의 탄생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팝 스타 아카데미: 캣츠아이’를 공개한 바 있다. 현지화 그룹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캣츠아이가 오디션을 통해 탄생한 팀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 것이다. 하이브는 미국 유니버설 뮤직 그룹 산하 게펜 레코드와 합작 오디션을 통해 이들을 탄생시킨 바 있다. 당시 이 오디션은 위버스, 하이브 공식 유튜브 등 SNS 채널을 통해 진행되었는데, 국내에서는 홍보가 부족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케이팝 아티스트의 탄생기를 자세히 볼 수 있는 좋은 오디션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무엇보다 과도한 경쟁보다는 SNS를 통한 팬들과의 소통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초기 팬덤을 확보하기 위한 오디션의 본래 목적을 잘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로그램이 흥행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이들이 데뷔하기까지 꾸준히 바이럴 된 배경에는 오디션의 힘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출처: 넷플릭스
더하여 오디션 프로그램의 연장선으로 공개된 다큐멘터리는 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팝 스타 아카데미’는 캣츠아이 멤버들이 데뷔하기까지의 노력은 물론,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할 연습생들을 선발하는 모습 등 케이팝 아티스트 제작 과정의 첫 단부터 면밀히 살펴볼 수 있다. 케이팝의 화려한 이면 속 완벽한 무대를 향한 멤버들의 열정과 관계자들의 치열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는 그동안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온 케이팝 시스템에 대한 여론을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또한 케이팝의 일원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다큐멘터리는 이들의 무대를 한 번쯤 궁금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실제로 다큐멘터리가 공개된 이후, 미국에서 입소문을 타며 트렌딩이 급증했고 빌보드 차트에서도 점차 반응이 오고 있다. 이는 케이팝 제작 시스템이 충분히 세계적인 표준이 될 수 있으며, 시스템만 잘 유지된다면 인종과 관계없이 케이팝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주류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설득되는 과정에서 오는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캣츠아이는 이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첫 사례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심이 기대되는 바다.
출처: 캣츠아이 ‘Debut’ 디지털 싱글 앨범 커버 / SIS(Soft is Strong) 하이라이트 메들리 영상 캡처본
이외에도 디지털 싱글 형태로 일부 곡을 선공개하며 기대감을 고조시킨 점, 멤버들의 모습을 호두까기 인형으로 캐릭터화해 하이라이트 메들리, 앨범 커버 등에 사용한 점 등 여러 트렌디한 프로모션을 적극 차용한 점은 인상적이다. 음악과 무대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 중요한 키 포인트가 되겠지만, 지속적인 관심의 기반을 만드는 것 또한 이들에게 있어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다양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생산하며, 그룹을 하나의 브랜드화하는 것에 최적화된 케이팝의 프로모션 방식은 캣츠아이에게 분명한 이점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출처: 캣츠아이 공식 X
이 글을 쓴 필자조차 캣츠아이라는 그룹은 어렵게 다가온다. 단순히 성공 여부를 떠나 케이팝의 위기론이 꾸준히 대두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현지화 그룹이 전환점이 될 것인가는 케이팝의 성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캣츠아이의 의미 있는 성과를 통해 케이팝의 북미 시장 진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에, 더욱 함부로 그 가치를 판단 내리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캣츠아이가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미지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이들의 행보는 그룹의 이익만이 아닌, 케이팝 산업 전체가 얻을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 현지화 걸그룹에서는 볼 수 없는, 특히 미국 대중들에게 임팩트를 남길 수 있는 음악과 프로모션에 대한 고민이 더욱 필요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케이팝 방법론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 또한 플레이어로서 그들이 지닌 확실한 매력과 차별점이 보일 때 더욱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캣츠아이가 K라는 수식어 앞에 혼란을 겪기보다, 케이팝이라는 문화가 가진 확장성을 더욱 보여주길 바라는 바다. 케이팝 산업이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했을 때, 미국 현지화 그룹의 존재 이유와 미래적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케이팝의 내수화와 한 때의 전성기로 기억될 것이라는 위기론의 언급 또한 스쳐 가는 주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케이팝 산업의 모든 일원이 위기론을 현실화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가운데, 캣츠아이의 도전이 무모함이 아닌 성장의 과정이 되기 위해선, 대중들의 관심 어린 시선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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