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부터 엠넷(Mnet)에서 ‘스트릿 우먼 파이터2(이하 스우파2)’의 방영이 시작되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명가인 엠넷답게 이번에도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끌며 흥행에 성공했는데, 바다를 필두로 한 리더 계급의 ‘SMOKE 챌린지’, 원밀리언(1MILLION) 크루의 메가 크루 미션 영상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렇게 댄스 경연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춤 잘 추는 아이돌’에게도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아이돌 그룹 ‘소녀주의보’ 출신 구슬이 딥앤댑(DEEP N DAP) 크루에서 꽤나 눈에 띄는 활약을 선보였고, 메가 크루 미션에서는 에스파 윈터, 비비지 신비, 산다라박 등의 아이돌이 등장하며 댄서 못지않은 춤 실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스우파2의 성공적인 흥행을 기념하며, 뛰어난 춤 실력으로 유명해진 여자 아이돌들의 안무 영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1. 애프터스쿨 <Flashback> 안무 영상
2세대 여자 아이돌 중 춤 잘 추는 것으로 유명한 그룹은 어디였을까. 소녀시대? 미스에이? 나인뮤지스? 앞서 말한 세 그룹도 안무가 어렵고 ‘칼군무’로 유명했지만, 애프터스쿨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댄스 멘토로 이름을 날린 가희가 있기 때문이다. 가희는 리더로서 중심을 잡으며 안무 능력치를 한껏 끌어올렸다. 그 덕에 애프터스쿨은 <뱅(Bang)!>의 드럼 퍼포먼스, <Let’s Step Up>의 탭댄스, <첫사랑>의 폴 댄스 등 아이돌이 소화하기 어려운 다양한 퍼포먼스를 완성도 있게 선보일 수 있었다.
애프터스쿨의 댄싱 능력을 엿볼 수 있는 곡은 많지만, 그중에서 비교적 인지도가 덜한 <Flashback>을 꼽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가희 없이’ 만들어낸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다. 사실 애프터스쿨의 안무를 보면 가희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댄스 브레이크와 같은 어려운 파트는 항상 가희가 센터에 서서 보는 이로 하여금 눈길을 끌고, 안무를 연습하는 과정에서도 가희의 많은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Flashback>은 가희의 도움 없이 온전히 멤버들의 역량만으로 이루어낸 결과물이다. 애프터스쿨은 그룹 이름에 걸맞은 입학과 졸업 시스템이 있었는데, 가은이 영입되는 대신 가희가 2012년 6월 일본 활동을 끝으로 졸업했기에 이 앨범에 참여할 수 없었다. <Flashback>은 리지, 나나, 레이나, 유이, 정아, 주연, 가은, 이영까지 총 8명이서 활동하였다.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공식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된 <Flashback> 안무 영상은 유튜브가 비교적 활성 되기 전인 2012년에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1100만 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하였다. 의상을 비슷하게 맞춰 입고 쾌적한 연습실에서 촬영하여 업로드되는 요즘 안무 영상과는 달리, 이 영상은 멤버 개인의 개성이 드러나는 사복을 입고 8명이 가로로 서기에도 벅찬, 좁은 연습실에서 촬영되었다. 정말 내추럴하다. 그래서일까, 멤버들의 춤선과 절도 있는 대형 이동이 더욱 도드라진다.
<Flashback> 안무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하면 애프터스쿨의 많은 인원, 큰 평균 신장을 제대로 활용한 것이다. 멤버 중 가장 단신인 레이나가 165cm라고 하니, 모델돌 ‘나인뮤지스’에 비견한다고 할 수 있다. 멤버 모두가 기럭지가 길어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상당한 포스를 풍기는데, 인트로부터 절도 있는 모델 포즈로 서 있어서 개개인의 매력이 극대화된다. 팔을 쭉쭉 뻗는 안무로 얻을 수 있는 여성스러움은 덤이다. 긴 다리로 빠르게 동선 이동을 하며 다양한 구성을 보여주고, 멤버들이 교차하며 걸어가는 안무는 무대가 꽉 차 보이게 한다. 이것은 오로지 다인원 그룹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 댄스 브레이크에서 마지막 후렴으로 넘어가는 파트의 안무가 압권이다. 정아를 시작으로 나머지 7명의 멤버들이 잔상처럼 이동하며 펼쳐지는 안무는 이 곡의 하이라이트를 가장 빛나게 만들어준다. 플래시백은 영화에서 흔히 회상 장면을 삽입할 때 쓰이는 기법인데, <Flashback>의 ‘잔상 안무’는 마치 영화 같은 느낌을 준다.
키가 추면 춤을 못 춘다는 편견이 있는데, 애프터스쿨의 <Flashback>은 이러한 편견을 완전히 깨버린 결과물이다. 동시에 가희 없이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애프터스쿨만의 자신감을 보여준 곡이기도 하다. 성공적인 결과물로 자신감을 얻어서일까, 애프터스쿨은 다음 타이틀곡 <첫사랑>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폴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연차가 쌓일수록 애프터스쿨의 출중한 실력이 잘 드러나서 그런지 <첫사랑>을 끝으로 제대로 된 팀 활동 없이 흐지부지된 것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2. 여자친구 <MAGO> 안무 영상 (Eye Mask ver.)
세대를 불문하고 칼군무로 유명한 걸그룹을 꼽는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여자친구를 택할 것이다. 폭우 속에서 공연하며 몇십 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준 <오늘부터 우리는> 직캠 영상, 예능 프로그램 ‘주간아이돌’에서 선보인 ‘2배속 안무’, ‘랜덤 플레이 댄스’ 등. 여자친구는 방송과 공연 등 다양한 곳에서 칼군무 이미지를 착실히 쌓아왔고, 마침내 마지막 완전체 활동곡인 <MAGO>에서 또 하나의 레전드 영상을 만들어냈다. 바로 멤버 전원이 안대를 쓰고 촬영한 <MAGO> 안무 영상이다.
발단은 JTBC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이다. ‘걸그룹 대전’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걸그룹 멤버들이 출연했고, 여자친구는 은하와 엄지가 출연하였다. ‘걸그룹 자랑 대결’ 코너에서 우주소녀의 수빈과 다영이 먼저 안대 쓰고 춤추기가 가능하다며 우주소녀 쪼꼬미의 <흥칫뿡>을 선보였으나 순조로운 출발과는 다르게 갈수록 무너지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여기에 은하와 엄지가 더 잘할 자신이 있다며 손을 들었는데, 그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두 멤버는 똑같이 안대를 쓰고 <Apple>을 췄는데, 동선과 대형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한 모습을 보였고 이 영상은 온라인 상에서 크게 화제가 되어 900만 회가 넘는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하였다. 여기에 힘입어 여자친구는 6명 모두가 안대를 쓰고 나와 연습실에서 <MAGO>를 추는 영상을 공식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하였고, 완전 대박이 났다.
유주가 중간에 대형에서 약간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시 완벽하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은 팬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안대를 써서 앞이 안 보일 텐데도 자신이 틀린 걸 깨닫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여자친구의 평소 연습량이 살벌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여자친구 멤버들의 리얼리티 영상을 보면 팔과 다리의 각도 하나하나까지 신경 쓰는 장면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연습량이 오늘의 ‘칼군무 아이돌’ 여자친구를 만든 게 아닐까.
비록 <MAGO> 활동을 끝으로 2021년 5월 공식 해체를 하였지만, 은하, 신비, 엄지, 세 명의 멤버가 ‘비비지(VIVIZ)’라는 그룹으로 재데뷔 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비비지는 주간아이돌에서 다시 한번 안대를 쓰고 나와 <BOP BOP!>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 영상도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다. 엠넷의 ‘퀸덤2’에 출연하여 춤 실력뿐만 아니라 뛰어난 가창력도 보여주기도 했다. 앞으로 더 새로운 퍼포먼스와 칼군무로 활동할 비비지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3. 이달의 소녀 <Cherry Bomb> 커버 영상
이달의 소녀는 4세대 걸그룹 중 대표적인 다인원 그룹이다. 그룹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총 12명이라는 상당한 인원수로 활동한다. 이러한 특징을 살려 <Butterfly>, <So What>, <PTT (Paint The Town)> 등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다. 특히 이브, 올리비아 혜, 희진, 등 뛰어난 춤 실력을 가진 멤버들이 많아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안무를 구성한다. 보컬이 강점인 츄, 하슬 등의 멤버들 또한 춤 실력이 상당하여 이달의 소녀에는 ‘댄스 구멍’이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멤버가 1인분 그 이상을 하기에 어딜 배치해도 파트를 무난히 소화할 수 있다.
완전체로 데뷔한 지 어언 5년, 활동곡도 상당히 많은데 왜 하필 NCT 127의 <Cherry Bomb> 커버 영상일까. 바로 ‘완전체’라는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느껴지는 영상이기 때문이다. 이달의 소녀는 다른 그룹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완전체로 데뷔한 그룹이 아니다. 첫 번째 멤버 희진부터 열두 번째 멤버 올리비아 혜까지, 12명의 멤버들이 한 달에 한 명씩 솔로 데뷔 프로젝트로 인지도를 쌓으며 22개월의 기다림 끝에 완전체로 데뷔한 그룹이다. (중간에 비는 시간은 유닛 활동 시간이다.) 이러한 초대형 프로젝트를 거치며 데뷔한 덕분에 멤버 개인의 인지도는 쌓을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대중에게 한 팀으로 다가서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상을 통해 이달의 소녀는 ‘원 팀’ 이미지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단체로 맞춰 입은 검은색 상의와 단조롭지 않게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코디한 트레이닝 바지와 신발. 우선 의상만으로도 통일감을 준다. 안무 역시 ‘원 팀’의 향기가 물씬 느껴진다. 이달의 소녀의 기존 활동곡을 보면, 다인원 그룹 특성상 자칫 산만하게 보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지는 몰라도 후렴을 제외하면 한 파트당 4~7명 정도만 참여하고, 나머지 멤버들은 무대 밖으로 빠져 있는 안무가 많았다. 그러나 이 안무 영상에서는 멤버 모두가 대부분의 안무를 다 같이 소화하고, 많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깔끔해 보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팀으로 다가온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팬의 유입도 많이 발생하였다. NCT 노래는 대부분 춤이 굉장히 어려운 데다가 ‘네오한’ 그룹 고유의 색이 잘 묻어 나오기 때문에 소화하기 어려운데, 이달의 소녀는 걸그룹임에도 불구하고 파워풀한 안무를 잘 소화해냈다. 특히 안무 영상에서 가장 많은 센터 자리를 차지하는 멤버가 올리비아 혜와 희진인데, 이 둘의 ‘걸크러쉬’ 매력에 이달의 소녀 팬이 확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올리비아 혜는 고난도 테크닉 동작도 안정적으로 수행하면서 메인 댄서의 역할을 완벽히 보여주었고, 희진은 파워풀한 춤선과는 상반되는 청순한 외모와 보컬 실력으로 시선을 끌었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이 영상을 본 이수만 전 SM 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이달의 소녀의 앨범 프로듀싱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Cherry Bomb>의 원곡 가수인 NCT 127은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이고, 당시 SM에서 총괄 프로듀서 직을 맡고 있던 이수만이 이 영상을 통해 이달의 소녀의 ‘가능성’을 보았다며 미니앨범 ‘[#]’의 제작 과정에 음악 프로듀서로써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이 알려지며 이달의 소녀는 데뷔 이래 가장 큰 주목을 받았고, 팬과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는 퍼포먼스를 뽐내며 4세대 아이돌로 성공적인 도약을 할 수 있었다. 팬 서비스 차원에서 올린 안무 영상이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대형 소속사 프로듀서의 투자까지 이끌어낸다니. 안무 영상의 파급력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아이돌은 노래와 춤 모두 실력이 부족하다는 편견은 옛날 옛적부터 존재하던 편견이다. 하지만 편견과는 다르게 요즘은 노래와 춤 모두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아이돌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이다. 아이즈원 출신 이채연, 소녀주의보 출신 구슬은 각각 스우파1과 스우파2에 출연하여 프로 댄서들 사이에서도 꿀리지 않는 모습과 더 발전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다. 아이오아이 출신 청하와 나인뮤지스 출신 경리는 실제로 백업 댄서를 맡다가 아이돌이 된 경우에 속한다. 실력이 뛰어난 많은 아이돌들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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