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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을 프로듀싱할 때 노래, 안무, 비주얼, 세계관 등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요인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인 ‘콘셉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보통 우리가 아이돌 콘셉트를 생각할 때 청순, 섹시, 청량 등 여러 종류를 떠올릴 수 있으며 퍼포먼스와 무대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방향성을 결정해주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콘셉트는 아이돌 정체성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세계관이 있는 아이돌 그룹이라면 세계관을 이어나가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를 위해 특정한 콘셉트를 몇 앨범 전반에 걸치는 이른바 ‘n부작’을 통해 선보이는 것이 케이팝 씬에서 유행하기도 하였다.
© SM Entertainment
© SM Entertainment, © JELLYFISH ENTERTAINMENT
여태까지 성공한 아이돌 그룹들을 살펴보면 각각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된 콘셉트가 존재한다. 가장 콘셉츄얼하다고 할 수 있는 그룹인 빅스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을 때 이들이 소화해온 콘셉트들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빅스는 강렬하면서도 참신한 콘셉트들을 차례로 선보이면서 명실상부한 ‘컨셉돌’로 대중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빅스 이전에 2세대 대표 아이돌 그룹인 소녀시대는 매번 다른 콘셉트들을 찰떡같이 소화하면서 계속하여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였다. 당장 소녀시대 활동 곡의 키워드를 나열해 보아도 제복, 치어리더, 걸스 힙합, 청순 등 굉장히 다양하게 콘셉트에 변화를 줬음을 알 수 있다. 방탄소년단, 트와이스, 블랙핑크, 엑소 등 다른 아이돌을 떠올려 보아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콘셉트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그 아이돌만의 잘 맞는 옷을 입으면 주목을 받는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모두가 콘셉트가 아이돌 성공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알고 있다. 어떤 것이 어울릴지 숙고하는 것도 고민이지만 콘셉트 변화의 여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무수히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콘셉트 변화를 시도한 바 있지만, 결과는 극단적으로 다르기도 하였다. 콘셉트 단 하나의 변화로 신선한 아이돌이 되는가 혹은 낯선 아이돌이 되는가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이처럼 아이돌에게 콘셉트 변화는 독이 될 수도 반대로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변화를 줄지 그렇지 않고 기존에 잘 해오던 콘셉트를 고수할지 결정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각각의 장단점이 명확하여 아이돌 콘셉트 변화에 대한 평가는 사실상 결과론이 되기에 십상이다. 이 지점에서 아이돌 콘셉트 변화의 딜레마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콘셉트를 바꾸지 않고 꾸준히 유지한다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보통 콘셉트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은 해당 콘셉트를 소화하는 것에 자신 있다는 말이다. 잘하는 것을 잘해야 하는 아이돌 그룹의 숙명에 적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도 기존에 해오던 방식에 약간의 첨감만 있을 뿐이라 비교적 쉬운 길을 갈 수 있다. 잘할 수 있는 콘셉트를 고수하다 보면 숙련되어 이른바 ‘콘셉트 장인’이라고 불리게 된다. 걸그룹 계 청순의 대명사라고 부를 수 있는 러블리즈는 청순 콘셉트를 꾸준히 이어나가 이 분야의 전문 그룹이라고 꼽을 수 있다. 이미 포화가 진행된 아이돌 시장에서 특정 콘셉트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그룹이 되는 것은 차별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퍼포먼스나 뮤직비디오 등에서 지속적으로 뚜렷한 콘셉트가 드러나는 것은 정체성 형성에 도움을 주며 차별화에도 유리하다.
하지만 콘셉트의 변화가 없다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타성에 젖으면 대중으로 하여금 호기심과 기대심을 잃게 한다. 대중의 관심을 꾸준하게 끌어야 하는 아이돌 그룹에 더 찾아보고 싶지 않다는 반응은 아이돌 그룹의 생존에 있어서 제일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콘셉트에서 나올 수 있는 구성은 비교적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보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찾아보는 재미를 잃게 될 가능성이 있다. 전과 차이가 보이지 않으면 안일하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치열한 경쟁이 난무하는 적자생존의 아이돌 시장에서 새로운 시도가 없다는 것은 얼핏 봤을 때 발전을 꾀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남길 수 있다. 매일같이 신선함과 독창성을 추구하는 케이팝 씬에서 현실에 안주하는 태도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게다가 실제로 콘셉트의 변화가 없다면 현상 유지에만 그칠 소지가 다분하다. 특히 팬덤 유입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하는 연차가 차지 않은 아이돌 그룹에 치명적일 수 있다. 신인 아이돌 그룹은 가장 먼저 아이덴티티를 확립해야 하지만 팬덤이 형성된 후 몸을 불려야 하는 시점에서 발전 없는 콘셉트는 적절하지 않다.
출처: Apink(에이핑크)-NoNoNo MV
출처: Apink(에이핑크)-%%(Eung Eung(응응)) MV
이와는 반대로 꾸준하게 콘셉트 변화를 시도했을 때를 살펴보겠다. 이를 통해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장점은 이미지 변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돌의 이미지 변신 자체로도 케이팝 씬에서 화제가 되기도 한다. 그룹 에이핑크는 수년간 러블리한 소녀를 표현해 오다가 근래에는 성숙미를 느낄 수 있는 콘셉트를 시도하고 있다. 청순하면 떠오르는 그룹 중 하나였던 에이핑크였기에 대중들은 이들의 변신에 주목하였고 멤버들도 새로운 콘셉트를 잘 소화하면서 에이핑크 그룹의 제2막이 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처럼 레드오션인 아이돌 시장에서 콘셉트 변화는 생존 수단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물론 콘셉트를 잘 소화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긴 하다.) 또한 콘셉트를 바꿀 때마다 아이돌이 발전할 확률이 높다. 누구에게나 잘해오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다. 새로운 콘셉트에 적응하기 위해 창법, 안무 스타일, 표정, 제스처 등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꾸고 능숙해지기 전까지 피나는 연습을 거쳐야 한다. 과정은 고단하겠지만 잘 이겨낸다면 개인은 물론이고 그룹 전체가 발전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트렌드를 좇다가 차별성을 잃을 수도 있다. 트렌드에 편승한다는 것은 가장 보편적인 것을 따르겠다는, 즉 천편일률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케이팝 씬에서 유행하는 콘셉트라는 이유로 분명 본인들이 잘 해낼 수 있는 콘셉트를 포기하고 선택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콘셉트 변화 역시 아이돌이 잘 적응해야만 의미가 있는 것으로 그렇지 못한다면, 맞지 않는 갑옷을 입고 전쟁에 나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무리하게 콘셉트 소화에만 초점을 맞추어 신경 쓰다 보면 다른 부분에 소홀해질 수도 있다. 아이돌은 본래 가수로서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고 무대를 잘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다른 것을 차치하고 오로지 콘셉트만 집중하다 보면 본질을 잃게 되는,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아이돌이 성공하는 요인을 콘셉트로 분석하기도 하지만 보통 곡의 퀄리티가 좋다든지 무대를 잘한다든지 하는 튼튼한 기본기는 아이돌 흥행의 지름길이다.
이렇게 아이돌 콘셉트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어떤 선택을 내리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딜레마인 것은 분명하다. 팬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꾸준한 발전은 중요하지만, 이것이 다는 아니다. 필자는 콘셉트 그전에 가장 잘할 수 있고 잘해야 하는 것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포장지가 화려하지 않아도 내용물이 훌륭하면 누군가는 진가를 알아주기 마련이다. 콘셉트에 가려진 아이돌 가수의 본질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를 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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