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는 지난 4월 진행된 케플러의 컴백쇼 영상이다. 여돌 박애주의자인 필자는 아무 생각없이 해당 영상을 틀었다가 무언가 미묘한 ‘어색함’을 느꼈다. ‘이 신선함, 뭐지?’ 그 원인은 다름아닌 스타일링, 의상이었다. 3부 내외 기장의 스커트 혹은 숏팬츠가 익숙했던 여자아이돌은 어느새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이색적인 스타일링을 선보이고 있었다. 물론 카고팬츠로 한 시대를 풍미한 카라의 <미스터>, 깔끔하게 떨어지는 정장 핏이 세련된 소녀시대의 <Mr.Mr.> 등 기존의 케이팝 여성성을 벗어난 시도는 꾸준히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 흐름이 상당히 빠르고 다양해진 것이다. 각 컨셉에 따라 세세한 의상 디테일이 추가되면서, 오피스, 뉴트로 혹은 청량이나 다크 등의 카테고리는 일차원적인 분류법이 되어버렸다. 같은 청량 안에서도 너드, 청춘이 갈리는 시대이고, 뉴트로에서도 복고, 하이틴이 갈리는 시대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필자가 소개한다는 케이팝 걸그룹 이색 스타일링은 도대체 무엇일까? 지금부터 알아보자.
위클리 - <Zig Zag>
첫번째는 위클리의 두 번째 미니앨범 타이틀 곡 <Zig Zag>이다. 2020년 데뷔한 위클리는 ‘매주 새롭고 특별한 일주일을 선사한다’는 캐치프라이즈를 가지고, 일상에 기반해 대중의 공감을 타겟팅하는 그룹이다. 데뷔 당시 평균 나이 18세였던 위클리는 이미지에 걸맞는 하이틴 컨셉으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스쿨룩 스타일링을 선보였는데, 독특하게도 <Zig Zag>의 메인 의상은 보이스카우트를 연상케하는 톰보이룩이었다. 이제까지 한국 교복, 외국계 교복 또는 걸스카우트의 형태로 제시된 스타일링은 많았지만 5부 기장의 반바지를 입고 활동한 걸그룹은 드물다. (사실 필자는 처음 봤다.)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 케이팝 걸그룹의 젠더리스 스쿨룩은 생각보다 조화로웠고, 개인적으로는 많이 센세이션 했다. 필자의 편협한 시각을 확인한 계기이기도 하다.
<Zig Zag>의 스타일링은 위클리가 가지고 있는 강점인 무대 소품 활용 때문에 기획된 것으로 추측된다. 위클리는 데뷔 타이틀곡 <Tag Me (@Me)>에서도 실제 책걸상을 가진 무대를 선보이며 대중의 이목을 끌은 바 있다. 두 번째 활동인 <Zig Zag> 또한 대형 큐브를 이용한 퍼포먼스가 있기 때문에, 큐브를 굴리거나 이동하는 데에 있어 어려움이 없도록 움직임에 용이한 5부 기장 숏팬츠를 택한 것 같다. 보통은 스쿨룩이라는 컨셉을 위해 스커트의 불편함 정도는 감수하는 편이라면, 해당 스타일링은 아티스트를 많이 배려한 기획으로 보인다. 상당히 인상적인 위클리의 이색 스타일링은 케이팝 씬에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 같다.
EXID - <내일해>
보통 걸그룹의 펑키/복고 스타일링이라 하면, 그룹에 한두명 정도, 많아야 절반 정도 바지를 입히는 것이 예사이다. 그러나, EXID는 ‘섹시’가 메인인 걸그룹임에도 파격적인 변신을 감행했다. 우리가 모두 아는 역주행의 대명사 <위아래>를 포함해 <AH YEAH>, <HOT PINK>, <L.I.E>, <덜덜덜> 등 비슷한 결의 앨범을 이어오던 EXID는 90년대 뉴잭스윙 장르의 <내일해>로 활동하면서 전 멤버가 데님 자켓에 조거팬츠, 카고팬츠를 입는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해당 스타일링은 안무를 함에 있어서도 큰 도움을 주었는데, <내일해>의 안무를 보면 기본기 위주의 안무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기본기 위주의 안무는 큰 화려함 없이 ‘기본기’에 가깝기 때문에 핏하게 스타일링 했을 때 자칫 안무가 비어보일 수 있다. 그런 단점도 보완하면서 곡과 안무의 무드를 물씬 살려주는 스타일링은 아티스트에게도 반갑게 다가왔다.
EXID는 신곡 ‘내일해’로 복고 콘셉트 의상을 입고 있다. 하니는 “너무 편하다. 역대급 몸무게로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컬투쇼' 흥부자 EXID·수줍은 한해..극과극 입담꾼들 [종합]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4/05/2018040502131.html
우리는 케이팝 걸그룹이 걸그룹이라면 응당 감내해야 되는 의상과 시선에 대해 익히 알고 있다. 그런 걸그룹의 입에서 스타일링의 변화만으로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필자는 적잖이 놀랐다. 사실 대중은 <내일해> 활동을 보면서 EXID의 컨셉적 변화에 주목했지, 그들의 바디라인에는 크게 눈길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는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EXID의 <내일해>는 기획만 조금 달라져도 케이팝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가 조금이나마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활동이다.
우주소녀 더블랙 - <Easy>
케이팝 걸그룹의 이색 스타일링 하면 절대 빼놓을 수도, 빼놓아서도 안 되는 것이 바로 이 ‘정장’이다. 실제로 ‘수트댄스’라는 원더케이 콘텐츠까지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이제 이 ‘수트컨셉’이라는 것이 케이팝 안의 서브컬쳐 정도 되지 않았나 싶다. 앞서 말했던 소녀시대의 <Mr.Mr.>부터 해서 <The boys>, 카라의 <숙녀가 못 돼>, <루팡> 등 수트 스타일링의 활동은 이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그럼에도 우주소녀 더블랙의 <Easy>를 이색 스타일링으로 손 꼽은 것은 바로 같은 듯 다른 수트 실루엣 때문이다. 우주소녀는 유닛 더블랙 이전에도 완전체 활동 <이루리>에서 승마복 컨셉의 스타일링으로 주목 받은 적이 있다. 그랬던 우주소녀가 ‘더블랙’이라는 유닛명을 가지고 ‘닉값 제대로 하는’ 스타일링을 들고 왔다.
<Easy>가 기존 케이팝 걸그룹의 수트 형태와 가장 다른 점을 꼽자면 바로 '블레이저'다. 이는 <Easy>가 본격적으로 음악 방송을 시작한 후 팬들의 입에도 오르내렸던 부분인데, 케이팝 여자아이돌이 입어왔던 프린세스 라인의 실루엣이 아닌 직선적이고 오버한 핏의 상의라는 것이다. 하의도 다르지 않다. 여타 다른 걸그룹이 보여주었던 수트 컨셉의 경우 타이트하거나 기껏 해야 스트레이트 라인의 딱 떨어지는 정장 바지였다면, 우주소녀 더블랙은 와이드하고 발을 다 덮는 기장의 하의를 택했다. 분명 익숙한 스타일링인데도 묘하게 다르게 느껴지고, 더 세련된 듯한 느낌을 주는 우주소녀 더블랙의 스타일링은 같은 수트 스타일링의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걸그룹의 의복 변화라 하면 연차가 차야만 수행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일명 ‘원카소’ 라인이 아니고서는 힘든 수준이었다. 이미지의 격변은 소속사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인데다 스타의 수익성과 연계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걸그룹 의상 문제에 대해 팬덤 전체가 이야기하는 시기를 겪으며 변화를 만든 세대다. 아이돌의 본업에 지장이 갈 만한 과한 노출, 짧은 기장의 의상에는 열심히 항의하고 목소리를 내며 의상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지난 현재에는 다양한 형태의 케이팝 걸그룹 스타일링이 제시되고 있지만, 정말 당시의 흐름이 반영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혹은 반영되지 않은 채 다시 무의식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당 기사를 쓰면서 ‘다양한’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으나 여전히 다양해진 게 맞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색적인 케이팝이 당연해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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