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처럼 일하는 작사가 DAY6 영케이가 쓴 이야기에 책갈피 끼워 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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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2일, 그룹 데이식스의 영케이가 입대를 했다. 입대 직전까지 소처럼 일만 하다 간 그는 데뷔 이후 쉬지 않고 149곡의 노래(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록 기준)를 썼고, 149곡 중 단 세 곡을 제외한 146곡은 가사까지도 영케이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80곡의 가사는 영케이의 단독 작품이다. 단독 작사한 가사만 다 합쳐도 소설 한 편은 거뜬히 나올 분량이다.
이제 영케이는 잠시 펜을 내려 두고 한숨 쉬어 가는데, 그가 남겨 놓고 간 길고 긴 이야기들을 복기하기 위해서는 이만한 타이밍이 없다. 그래서 시점도, 감정도 각기 다른 영케이만의 가사를 처음부터 한번 펼쳐보며 ‘이야, 이거 진짜 기가 막혔지.’ 싶었던 가사에 책갈피를 슬쩍 끼워보려 한다. 2023년 그가 돌아오기 전까지 두고두고 펼쳐볼 수 있도록.
백아연 - 이럴거면 그러지말지 (Feat. Young K) (2015.05.20)
구썸남의 어이없는 자기 탓
어때 넌 어떻게 하고 싶니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일지 중간에 금방 에러가 날 것인지
I don’t know 하지만 내 생각엔
오래가진 못할 거 같아
너 아닌 나 때문에
이 관계는 이어지지 못해
영케이의 첫 저작권 등록 곡이자 첫 작사 참여 곡인 백아연의 ‘이럴거면 그러지말지’는 읽기만 해도 속이 부글거리는 어장남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잘만 하던 연락도 없이 싹 숨어버린 녀석, 너 그럼 그때 왜 그랬어? 라고 묻는 말에 ‘네 문제가 아니야… 이건 나 때문이야’라고 답해 버리다니. 영케이만의 현실적인 가사는 바로 이때부터였다. 백아연이 밝힌 비하인드로는 ‘이럴거면 그러지말지’의 랩 파트를 위해 많은 후보를 받았는데, 영케이가 쓴 가사가 가장 실제 주인공이 한 말과 비슷해서 채택했다고 한다. 작사가 데뷔부터 존재감 넘치는 것이, 너무도 영케이답다.
DAY6 - 예뻤어 (2017.02.06)
가장 깔끔한 이별의 회상
지금 이 말이 우리가 다시 시작하자는 건 아냐
그저 너의 남아있던 기억들이 떠올랐을 뿐이야
데이식스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곡을 꼽으라면 두말할 것 없이 모두가 ‘예뻤어’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곡의 덤덤하고 담백한, 그래서 더 짠한 가사 역시 영케이의 단독 작품이라는 것은 아직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은 듯하다.
‘예뻤어’ 도입에서 조용히 시작하는 기타 멜로디와 함께 들리는 첫 가사는 흔한 이별 노래에서 헤어진 연인, 지나간 인연을 붙잡는 구구절절한 메시지가 아니다. ‘우리 다시 잘해보자’라거나, ‘보고 싶어’, ‘그리워’, ‘돌아와’도 아니다. 그냥 네 기억이 떠올랐고, 생각해보니 네가 예뻤다는 것. 더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 보일 법도 한데, 단지 자신에게 남은 기억을 펼쳐만 보는 게 어딘가 내 얘기 같기도 한 것이 안쓰럽고 씁쓸하다. 이렇듯 영케이는 터지고 몰아치는 감정들 뒤에 가려졌던 소소하고 일상적인 감수성을 멜로디 위에 얹어 공감을 자아내고, 이것이 데이식스 음악 특유의 담백한 감성을 만든다. 꾸미지 않은 솔직한 언어의 힘이란 강력한 법이다.
그러나 정작 영케이는 인터뷰에서
'예뻤어'라는 곡도 처음에 ‘예뻤어’라는 단어에서 시작했어요. 무엇이 예뻤을까 생각하다가 그냥 이 모든 게 예뻤어 하고 상상하며 써 내려간 곡인데 다들 자신의 연애 경험이 떠오른다고 하면서 들어주셔서 또 신기했어요.
- 얼루어 코리아 2021 10월호, <Hold me tight> 인터뷰 中
라고 밝혔다. 본인의 의도와는 다른 청자들의 과몰입(?)을 신기해했다는 점이 또한 영케이 답게 비범하다…
DAY6 -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2018.12.10)
모든 마지막은 ‘행날’처럼
모든 게 아름다웠어 우울한 날들은 없었어 지금 돌이켜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후회는 남기지 않았어 사랑했으니까 뭐 됐어 첫째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아 행복했던 날들이었다 (꿈만 같았었지) 이제 더는 없겠지만 지난 날로 남겨야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인데, 모든 일의 끝이 그렇게 속 시원한 것은 아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시험도, 정말 좋아했지만 어쩔 수 없이 멀어져 버린 사람도, 내 모든 것을 걸었지만 탈락한 면접도. 구질구질하게 붙잡고 늘어지고 싶고, 미련이 남고, 이제 좀 털어버릴 법도 한데 까먹다가도 또 생각해버리는 것이 무릇 사람의 심리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좀 더 마음 편하게 살기 위해서는 ‘행날’의 자세가 필요하다.
영케이의 가사 속에서 화자는 지난날 행복했다며 쿨하게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버린다. ‘왜 그랬지’ 자책하며 괴로워하던 사람에게도 후회 없게 나의 최선으로 사랑했으니 됐다며 털어 버릴 용기를 준다. 묘하게 신나고 후련한 멜로디, 기분이 좋아지는 레트로 사운드는 덤이다. 그리고 여유롭게 ‘찌질’할 여지를 남겨 준다. 미련이 ‘작렬’하진 않지만 가끔은 널 그리워할 것이고, 사실 가끔은 아니고 자주겠지만 그때도 괜찮다고 스스로 말해줄 거라고. 늘 덤덤하고 한결같은 표정을 한 강철 멘탈 친구(영케이)의 사고를 잠시 엿보는 기분이다. 모두의 마지막이 부디 ‘행날’ 같았으면 한다. 그럼 우리는 좀 더 쉽게, 덜 상처받고 어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실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가사가 아닐 수 없다.
DAY6 (Even of Day) - 그렇게 너에게 도착하였다(Landed) (2020.08.31)
돌고 돌아 찾은 사랑의 의미
답도 없이 그저 서성이던 날들에 어디에서도 사랑은 못 찾았지만 지금 여기 니가 주는 이 느낌 사랑일 수 있을 것 같아
영케이를 잠시라도 좋아했던 팬들이라면 이 노래의 가사를 읽고 코가 시큰했을 것이다. 단언하건대 ‘그렇게 너에게 도착하였다’는 영케이가 가장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쓴 가사일 테니.
언젠가 한 팬이 영케이에게 ‘왜 가사에 사랑해라는 말을 잘 안 쓰고 좋아해라는 말을 많이 쓰냐’라고 물어보았는데, 영케이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어서 단어를 함부로 쓰면 안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사랑은 다른 마음보다 더 아껴야 하고 좀 더 특별하게 대해줘야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는 콘서트 소감도 남긴 적이 있다. 그런 그가 ‘네가 주는 느낌이 사랑일 것 같다’고 말하다니. 그동안 영케이의 말과 글에서 묻어났던 사랑에 대한 고뇌가 팬들이 주는 마음으로 귀결되었다는 점이 가사를 한층 감동적으로 만든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 의미를 찾아 헤매는 이들이 있다면 언젠간 돌고 돌아 ‘집’이라고 부를 사랑을 찾게 될 거라 말해주고 싶다. 마치 팬들 곁, 무대에서 사랑을 발견한 영케이처럼.
Young K - 사랑은 얼어 죽을 (2021.09.06)
처음으로 털어 놓는 감정의 신선함
아 사랑은 얼어 죽을 그게 무슨 사랑이냐고 Yeah I need somebody 내 맘을 좀 녹여 달라고 그저 떨고 있어야만 한다면 I hate love 뭐 그게 진짜 사랑이라 해도 난 안 해
음악평론가 김영대는 영케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누구나 쓸 수 있는 단어들로, 하지만 누구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그는 더없이 훌륭한 재능을 가진 작사가다. 그의 가사는 소위 ‘킬러’라 불릴 만한 도드라진 표현들뿐 아니라 아주 평범한 묘사 속에서 더더욱 빛이 난다.
- 음악평론가 김영대, 주간 문학동네 《지금 여기의 아이돌-아티스트》
7장.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밴드형 보컬그룹, 데이식스 中
영케이의 가사는 일상적이고 쉬운 단어로 이루어져 있으나 감정의 표현 방식과 소재 선택에서 종종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이 감정을 이렇게 가사로 쓴다고?’ 등의 감상을 내뱉게 하는 것이 그의 가사이다. 실로 그럴 것이, 그의 가사는 100편이 훌쩍 넘지만 내용이 겹치는 곡은 찾아보기 힘들다. 단독 작사는 아니나 노래의 시점에서 자신을 오래도록 불러 기억해달라는 내용의 ‘Sing Me (DAY6)’, 내 연인은 내가 가장 잘 아니까 잘 모르고 막말하지 말라는 ‘막말 (DAY6)’, 지겹도록 싸우는 연인에게 너네 연애 볼 장 다 봤으니 이제 그만 때려치우라는 제삼자 시선의 ‘때려쳐 (DAY6)’ 등 영케이는 끊임없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느껴봤으나 감히 가사로 써볼 생각 하지 못했던, 하나의 감정만으론 정의하기 힘든 그 느낌을 4분 남짓한 노래 가사로 써낸다. 그래서 신선하고, 또 인상적이다.
이 곡의 가사에서 역시 마찬가지로 영케이는 사랑의 이면에 선 갈등을 목도하고 이런 사랑이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낫겠다며 허심탄회하게 사랑을 논하고 있다. 이토록 솔직한 사랑의 묘사라니,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의 환상을 철저하게 깨부수는 예리한 문장이다. (앞서 겨우 발견했던 소중한 사랑의 현실인 걸까….) 하지만 사랑을 아예 관두겠다는 것이 아닌, 더 가슴 뜨거운 사랑을 하겠다며 락킹한 사운드 위에서 힘차게 노래하고 있으니 이건 사랑에 냉소적이기보다 오히려 이상적인 사랑을 향해 들끓는 마음을 표현하는 듯하다. 이제껏 우리가 알고 있었던 ‘인연의 끝’에 ‘사랑은 얼어 죽을!’이라며 사이다를 부어버린 영케이, 그에게 사랑은 더없이 뜨겁고 찬란하다.
© JYP 엔터테인먼트
Q: 그만큼 보편적인 감정을 잘 쓰는 거 아닐까요? 그게 누구든 자기 이야기가 될 수 있게끔.
그러려고 많이 노력해요. 단어 선택을 할 때도 상황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감정을 서술하려고 해요. 감정은 다양하니 듣는 분들이 공감해주시는 것 같더라고요.
- 얼루어 코리아 2021 10월호, <Hold me tight> 인터뷰 中
한 사람이 처음 사랑을 배워 이별하고, 좌절했다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를 7년간 부지런히 가사로 남겨준 영케이 덕분에 함께 걷는 인생길에서 나 같은 사람 어디 없나 찾으며 외로워할 일은 없을 것 같다. 다시 영케이의 가사가 세상에 나올 때까지, 우리는 그저 영케이가 쓴 ‘내 얘기’ 속에 두고두고 읽을 페이지 한 장을 찾아 책갈피를 꽂아 두면 된다. 아마 한두 개로는 부족할 것이다.
읽어보세요, 영케이가 남겨 놓고 간 이야기. 그리고 다시 시작될 이야기를 같이 기다립시다.
참고
[1] 얼루어 코리아, 2021.09.23
[2] 김영대, 주간 문학동네《지금 여기의 아이돌-아티스트》7장.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밴드형 보컬그룹, 데이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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