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에는 별명이 하나 있다. '보는 음악'. 가수 이무진의 표현을 빌리면, 뮤직비디오를 만드는 것도 음악을 더 잘 느껴 달라고 만드는 것이다. 이 외에도 곡이 전하는 심상을 더 구체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동안 케이팝 산업은 다양한 시각 장치를 발달시켜 왔다. 음반 패키지, 콘셉트 필름과 티저 사진, 착장, 무대 디자인 등 숱하게 보아왔을 요소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춤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노래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 특유의 역동성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역할을 한다. 에너제틱한 춤이 지닌 주목도와 시각적 직관성은 강한 전파력을 띤다. 때마침 마중 나온 숏폼 콘텐츠 시장의 상승세와 맞물려 댄스 영상은 빠르게 퍼져 나갔고, 덕분에 춤은 케이팝 산업의 흥행을 견인한 일등 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음악 없이는 춤도, 그 외 부가적인 콘텐츠도 존재할 수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 와 돌아보건대 케이팝은 군더더기를 제외하고 본질인 '음악' 그 자체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는 얼마나 애써왔는가? 이미 짐작했겠지만, 댄스에 비해 보컬은 관련 콘텐츠의 질적 발달 불균형이 심한 실정이다. 콘텐츠 뿐 아니라 보컬이 특기인 멤버의 절대적인 수도, 퀄리티의 문제도 있다. 아이돌 판도 전체가 꽤 오래 전부터 댄스보다도 보컬에서 현저한 '멤버 품귀 현상'에 시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도 유독 보컬 쪽에서는 톤메이킹의 완성도는커녕 기본기의 안정성조차 없는(성대접지와 복압, 발성에 대한 몰이해, 공명점에 대한 무감각 등) 정도에 수렴하는 사람도 많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케이팝 제작자들이 '소리'의 퀄리티에 신경쓰지 못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또, 왜 케이팝의 청중은 '소리'에 신경 쓰지 못하는가?
소리는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어떠한 대상이 인상을 남길 때, 인간에게 어떠한 대상이 인상을 남길 때, 오감 중 시각의 지분이 가장 크다고 한다. 인간의 감각수용체 전체 중 70%가 시각에 관여하고, 대뇌피질의 절반이 이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데에 쓰인다고 하니 그 과정적 복잡성과 물리적 수치만 봐도 가히 인간의 인상에 미치는 영향은 알 만한 정도라고 하겠다. 그래서 실제로 시각은 가장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감각이다.(한정선, 2004:45) 그리고 춤은 바로 그 '시각'으로 전달된다. 하지만 보컬과 음악의 반주를 포함한 모든 소리는 '청각'으로 전달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 두 분야가 사용하는 기관의 차이도 매한가지다. 춤이 사용하는 신체 기관은 당장 눈에 보인다. 다리로 킥을 차면 찬 것이고, 팔을 좌우로 뻗으면 좌우로 뻗은 것이다. 하지만 노랫소리를 만들어내는 데에 기여하는 성대, 후두, 비강, 횡격막과 같은 기관들은 그 소재와 구조, 동세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지식인이 아닌 사람의 시선에서는 좀처럼 이야기할 만한 거리를 바로바로 잡지 못한다. 결과물인 소리도 눈에 안 보이는데, 근육들의 움직임도 안 보이니 결국 보컬링의 과정이란 추상적이어서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인상만 남긴다. 그렇다 보니 성대과접촉으로 질러도 단순히 '고음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보컬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고 취급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보컬뿐 아니라 음악 자체의 사운드적인 측면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뉴진스의 <ASAP>에서는 곡 내내 백보컬로 깔리는 여음구가 노골적인 좌우 패닝(좌우로 소리가 왔다 갔다 함)을 어필해도, 페어리코어(fairycore) 풍의 시각 요소에만 집중하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다. 당연하게도 춤보다는 노래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소리'에 대해 한 마디라도 더 얹는 것이 어려운 탓이다. 바로 그 부분에서 대중에게 이해의 맹점이 발생한다. 결국 특정 구간의 춤, 착장, 무대 연출, 멤버들의 비주얼이나 표정 연기에 대한 언급은 많아져도, 보컬이나 사운드적인 부분을 칭찬하는 반응(이를테면 댓글)이 그만큼 나오려면 하릴없이 스크롤을 내려야 나올까 말까 하는 모양새가 된다. 직관성의 차이는 이렇게나 현저한 반응의 차이를 불러오고, 이는 다시 무서운 분야별 시장 성장의 격차를 만들어낸다.
<리무진서비스>는 이러한 이유에서 희망적이다. 시청자들이 꼭 필요했던 '친절함'을 해결해 준다. 프로그램의 호스트인 이무진은 '치찰음', '롱톤', '성대접지' 등 일부 전문적인 용어를 쓰기는 하나 그러면서도 적당히 상세한 설명을 함께한다. 전문성의 벽은 호스트를 향한 신뢰감으로, 친절한 설명은 미지의 영역이었던 보컬링에 구체성을 더하는 조화를 뽐낸다. 여기에 일상 토크, 막간 개그를 간간이 곁들여 너무 무겁지 않게 프로그램을 이끈다. 실내 스튜디오라 소리를 안전하게 받을 수 있다는 장점에, 아예 처음부터 완곡을 목적으로 노래를 준비해 오므로 짧은 노래 커버 영상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실력적 디테일과 완곡의 미감을 다 음미할 수 있다는 것도 훌륭한 부분이다.
때마침 KBS와 SBS가 각각 런칭한 <Sound 360>이나 <싸운드밤 삼육공> 같은 프로그램도 이러한 흐름에 편승한다. 둘 다 무대 한 번의 소리를 더욱 입체적으로 담으려 노력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Sound 360>의 경우 본방 무대 자체의 분위기를 담는 데에 집중한다. 현장 관객의 응원소리와 함께 고음질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원 속 이미 믹싱된 소리의 위계, 그 위로 덧입히는 라이브 보컬, 그리고 이가 현장의 공간과 부딪히며 만나는 그 열기까지 모두를 생생하게 담는다. 격한 안무 때문에 무대에서 발생하는 각종 충격음도 고스란히 담긴다. 해당 공간의 분위기를 종합적으로 담아 현장감 있는 전달이 우선적인 초점이다. 반면 <싸운드밤 360>의 경우 아예 따로 전용 스튜디오를 마련해 촬영한다. 퍼포먼스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작은 원형 무대에 서서, 오롯이 보컬의 질감과 속성을 섬세히 표현하려는 데에 모든 감각이 향해 있다. 더불어 가창 시 가창자의 무대 매너를 노골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보컬 이외의 다른 요소는 모두 정돈되어 있다. 그래서 두 프로그램의 차이는 현장 ASMR 같은 개념의 공간음향과 보컬 위주 음향표현 정도라고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이러한 부류의 콘텐츠는 사람들이 소리의 위, 아래나 앞, 뒤 같은 방향성을 느끼게 함으로써 자연스레 공간감 체득을 돕는다. 이는 박자나 음정이 전부라고 믿으며 그간 평면적으로 인식했던 '소리'라는 개념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3차원적인 개념으로 변모시킨다. 청각에의 경험을 누군가의 도움 없이 청자 스스로 더욱 풍부하게 느끼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화려한 퍼포먼스에 가려져 있던 목소리를 조명하는 '듣는 K-POP의 새로운 감동' "
<싸운드밤 삼육공>의 캐치프레이즈다. 케이팝은 언제부터 '보는 음악'이 '듣는 음악'을 잡아먹기 시작했을까? 보컬과 관련된 콘텐츠를 늘리려는 노력은 사실 과거에도 있었다. 케이팝에도 엠넷에서 런칭한 <엠카 보컬 챌린지>나 <그래 이 노래(그래이노래)> 등 어떻게든 보컬 관련 콘텐츠를 늘려보겠다는 심산으로 만든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도 수많은 보컬 인재를 발굴해 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곳과 다르게 이 프로그램에서만 두드러질 수 있는 특징을 잡지 못했기에 번번이 아쉬운 수준에 그쳤다. <엠카 보컬 챌린지>는 평소라면 만나보지 못했을 여러 아이돌의 목소리를 한 노래 안에 파트별로 다양하게 조합해 선보인다는 명분 이외의 신선한 포맷을 좀처럼 선보이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래 이 노래>의 원테이크 보컬과 제스처, <슈퍼스타K>의 오디션이라는 형식은 엄연히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개념이다. 다행히도 시간이 흐르고, 업계가 성숙하면서 점차 관계자들 역시 '소리'에 집중하려는 흐름이 생겼다. 그 결과 상기된 것과 같은 수많은 질 좋은 '소리 집중형 콘텐츠'들이 나타났고, 수많은 대체 가능한 콘텐츠들은 화제성을 잃는 것으로 대가를 치뤘다. 이렇게 수많은 칠전팔기 끝에라도 괄목할 만한 가요계 유튜브 보컬 프로그램이 나온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래서 "노래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수준에 그쳤던 이전보다도, 앞서 언급한 최근의 신규 프로그램들은 한 차원 더 높은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업계에 부는 사운드 열풍이 소리를 등한시하지 않는 케이팝이 되는 길인 것 같아 필자는 마냥 반갑다. 시각보다 청각을 향한 자세를 더 올바르게 고쳐 앉아야 한다. 더 바르게 바라보고, 집중해야 할 대상의 우선순위를 놓치지 않을수록 음악은 비로소 음악으로서 대해질 수 있다. '듣는 음악'으로 다시 돌아와도 케이팝은 여전히 봄이기를 간절히 바라 보며 이만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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